개인적인 사상은 가치관이 되지만 조직이 사상을 가지면 이념이 되고 학자들의 사상은 철학이 됩니다. 인류는 오랜 기간 철학을 잃어버리고 살아왔습니다. 수세기 동안 이룩한 과학적 발전에 비해 철학적 사상의 태동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보여준 과거의 사상 역시 시대에 편승한 포퓰리즘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에 정면 도전한 철학가가 있습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창하며 인간 역시 별다를 것 없다는 장자입니다. 어찌 보면 현대사회의 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장자의 무위자연은 현실의 잡다한 문제에 부딪히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철학이란 생각이 듭니다. 너와나의 개체를 인정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 결국 다름이 곧 같다는 결론은 일순간은 허망할지 모르지만 결국 우리들이 원하는 삶에 대한 궁극적인 목표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자라는 거대한 산이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한문은 고사하고 뜻풀이조차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해설이 주가 되어 읽어 내려갑니다. 장자는 유달리 우화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는 직접적인 화법보다는 철학가다운 간접화법을 통해 스스로 이해하기를 기대합니다. 장자는 크게 내편과 외편, 잡편으로 구분되는데 총 52편중 33편만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그중 내편 7편이 순수한 장자의 사상을 말하고 외편과 잡편은 노자의 사상과 제자들의 글을 집대성한 것입니다.

장자의 제1편을 장식하는 소요유(逍遙遊)는 장자의 철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슬렁어슬렁 거님이란 뜻을 지닌 소요유는 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세계를 노니는 지극한 사람의 경지를 뜻합니다. 소요유를 이해하기 전에 장자가 주창하는 무위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위(無爲)의 핵심은 어떤 것에도 기대지 말라는 무대(無待)를 의미합니다. 무대는 불안정한 인간의 이성과 감정은 항상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값을 메길 수 없으니 모든 것을 초월하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무위는 자연으로 귀결됩니다. 또한 형상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있기 때문에 굳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숙명론을 제시합니다. 언뜻 보면 현실과는 너무 상반된 허무맹랑한 말 같습니다. 하지만 장자는 춘추전국시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진정으로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던져줍니다.

흔히 도가를 유가와는 반대되는 철학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자는 유가의 사상을 상당부분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자가 주장하는 도를 넘어선 무의 개념을 강조합니다. 황홀함의 극치라는 노자의 도도 결국 아무런 조짐이 없는 것이라며 재물론을 펼치게 됩니다. 그는 무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무무라고 말합니다. 또한 무는 삶과 죽음도 초월합니다. 현실과 꿈의 교차를 통해 어디가 진실인지 알지 못하겠다는 장자의 나비에 관한 우화는 장자가 표현하고자하는 무 세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교의 해탈과 윤회설마저 장자의 이야기 앞에선 우화로 변신하는 것 같습니다.

장자의 철학은 확실한 물증을 요구하는 사회에선 비현실적인 도가로 평가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장자의 철학을 주목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인간이 지닌 자유 의지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장자는 유별난 전쟁의 시대를 기억합니다. 그는 전쟁을 통해 권력의 무용함과 군주의 무능함을 보았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부르짖었던 이념이나 명분이 얼마나 쉽게 변절되는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장자가 추구하고자하는 이상사회는 어쩌면 우리들의 마음에만 존재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린 유가의 엄격한 규칙보다 장자의 무위자연에 더욱 마음이 다가갑니다. 위대한 사상가의 철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생을 송두리채 바쳐도 부족할 것입니다.

무위자연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란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장자의 자연 속엔 세상의 고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가 아는 약육강식의 세계입니다. 같은 철학이지만 우린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남과 다른 나에 대한 존재를 깨닫는 순간 철학이 시작될 것이며 무란 의미를 조금씩 이해함으로 손에 쥔 것을 하나씩은 버릴줄아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요? 무위자연을 꿈꾸었던 위대한 철학가의 소망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