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허구의 문학이기는 하지만,

어쨋든 사람이 쓰는 글이라, 작가의 태생이나 자라온 환경 등이

작품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출생이나 출신 등이 남들과는 좀 다른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면

일반적인 소설들과는 다른, 약간은 새로운 이야기가 창조될 수 있다.

얼마전에 읽었던 가네시로 가즈키의 [GO] 같은  작품들은

한국국적을 가진 재일교포가 아니고서는 쓰기 힘든

이야기와 삶의 진실성 등을 담고 있었다.

[꽃들의 질투]도 그렇다.

만약 작가인 이자벨 라캉이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지 앉았다면, 그래서

금발의 여인과 함께 벤치에 앉아 있는

외할아버지의 사진을 보지 못했다면

이런 이야기를 상상해 낼 수 있었을까?

그동안 역사소설이나, 꼭 역사소설이 아니더라도

구한말 일제 강점기 하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도 많이 읽어봤지만,

[꽃들의 질투]처럼 독특한 이야기는 물론 처음이었다.

조선에 대한 침탈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서서히 마수를 뻗치던 일본,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러일전쟁까지 일으키며

조선을 둘러싸고 있는 열강들의 세계에서 승자로 군림한 뒤

힘없는 조선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쥐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부리던 혼돈의 시기.

일본의 침략의 부당성과 야만성을 전 세계에 알려

서구 등 세계 열강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조선,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몇몇의 특사를

각국에 보낸다.

특사를 보내는 황제의 마음은 어땠을까?

제국주의의 망령이 온 세계를 휩쓸던 그 시기에

정말 서구의 국가들이라면 조선의 독립을 지지해주고

일본을 비난해 줄꺼라는 희망을 꿈꾸었을까? 아님,

어차피 소용없는 짓인줄 알면서도

가만히 손 놓고 앉아 있을 수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냈던 것일까?

물론 국사에서 배우기로는

민족자결을 주창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발언,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몽테스키외의 나라, 프랑스 등

서구의 열강들이라면 조선의 피 맷힌 주장에

귀 기울여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꽃들의 질투]에서 프랑스 특사로 파견되는

박일환도 역시 그런 생각이었고.

그렇지만 역시 세상에 온정적인 이타주의란 없다.

특히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망령이 휩쓸던 그 시기엔.

어느 누구도 동양의 작은 나라, 대한제국에서 온

동양인의 주장에는 아무런 관심도, 지지도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생김새와 복장 등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런 냉혹한 현실을 모른채 부푼 가슴을 안고

프랑스로 떠나는 일환의 모습을 그래서 안쓰럽다.

큰일을 위해 그 거리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안되an style="FONT-SIZE: 11pt; LINE-HEIGHT: 130%; FONT-FAMILY: ’HY수평선M’">머나먼 길을 떠나는 남편을 속절없이 바라보며,

그저 집단속 잘하고 아이들 잘 키우고 있겠노라고

다짐하는 그의 아내 순희도 애처롭기만 하다.

황량한 시베리아를 몇날 며칠을 달려 도착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그곳에서 접한 첫 번째 좌절감과 환멸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다시 접한

유럽의 향략과 위선, 그에 따른 두 번째 좌설,

그래도 몽테스키외의 나라 프랑스가 있다고

마음속에는 희망의 꽃을 피웠을텐데,

역시 하나도 다르지 않은

그들의 무관심과 위선은

프랑스와 서구문명 전체에 대한 환멸과 함께

헤어날 수 없을 정도의 좌절감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조선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내겠다는

특사로서 그의 사명감이 무참히 짓밟혀버린

그 좌절감은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지 않았을까?

그런 절망의 끝에서 만난, 뜻밖의 사랑의 감정은

특사로서의 사명감에 가득 찬 그에게

편하지만은 않은 감정이었겠지만

그렇게라도 희망을 지켜내야 했던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랑하는 여인,

이 여인과 함께 익명의 그늘에 몸을 숨기고

살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그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샘솟았지만,

그래도 특사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잃지 않고,

다시 고국으로 돌알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의 감정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서구 열강들은 약소국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심도 없다는,

일본이나 서구 국가들이나 한통속이라는, 그래서

스스로 일본을 이기지 않고서는

조선은 독립국의 위치를 지킬 수 없으리라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은 후의 그 절망감은

사랑의 감정이 아니었다면,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더 비극적으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가슴아픈 이별을 담고 있는 사랑이었으니.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갔지만,

아내와 자식들을 지척에 두고서도

결국 조선으로부터도 버림받고

중국에서 약물중독자로 연명하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일환의 생의 마지막이 너무나 먹먹했다.

신선한 이야기

독특한 이야기 전개방식,

감점의 미세한 떨림까지 그려내는 필력,

그리고 가슴 아픈 결말까지...

읽는 내내 즐거웠고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