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내가 가진 책은 Dutton 에서 나왔다. 출판사가 맞는 것이 없어 그냥 펭귄 책로 상품찾기 했다)

개봉을 영국에서 2003년에 했다니까 아마 재수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귀고리가 아닌 '귀걸이'라는 제목에 약간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 뭐가 멋있는지 모르겠는 그냥 영국인 같은 콜린 퍼스와 유난히 입술이 두툼해 포스터에서 귀고리 보다도 그 입술에 시선이 갔던 포스터를 보고도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예고편을 보고, 극장에서 그림처럼 번져오는 그 영상에 굳이 이제 더이상 영화 안보고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재수생 친구 무리들의 약속을 깬 채 나 홀로 9월에 이 영화를 보러 갔다. 극장 자체를 당시 잘 가지도 않았지만, 혼자서 7000원이나 내고 봤던 건 당시로선 참 큰 무리였다.

영화를 보고 그 아름다운 돌 바닥을 걷던 그리트와, 대체 뭔 심정인지 알 수 없는 눈빛의 베르메르의 이야기에,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에 팬이 되었다.

하루 만 원의 용돈에서 7천원은 정말 거금이었는데 잘 봤다고 생각했고, 그 길로 이 책의 원서를 주문했다. 아마 그게 한글 단어 주해가 달리지 않은 원서로는 내가 산 첫 원서였을 것이다. 그림책이나 로알드 달 책들은 대학 입학하고 나서야 읽기 시작했으니까. 그림책을 그 이후에 시작했으니 이 책은 사놓고도 당연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3만 2천원인가 3만 4천원을 호가하는 당시의 하드커버에 러프컷을 보고 이 책이 비싼지 아닌지도 잘 몰랐지만, 마냥 좋아 책 허리 띠 까지 다치지 않도록 살살 보관해오고 있었다. 그동안 다른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한번씩 이 책을 열어봤다가 닫았다가 했는데, 혼자서는 읽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약 7년만에 다시 접한 이 책은 그다지 어려운 부분도 없이 은근히 재미까지 있었다. 왜 영화보다 책이 훨씬 낫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 하녀와 주인의 .. 아니, 하녀의 외사랑 이야기..를 현재의 미스테리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어떤 그림과 연관 시켜서 썼다는 이유로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그런 취향의 인간은 아니지만, 늘어지는 내용 없이 한 챕터 한 챕터로 그날의 에피소드를 종결 시켜나가면서 하나씩 지체없이 이야기가 완성되어 나간다는 점에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좋은 표현, 그러니까 문학적인 그런 측면에서라기 보다 옛날 이야기를 다루고 거기다 네덜란드라는 외국의 이야기임에도 현대 영어 중 유용한 표현이 많이 나오는 책이라는 점에서 영어학습자로서 이용하기 좋았다. 지나치게 길지 않으면서 일상생활에 많이 사용 가능한 그런 대화체의 문장으로 영어를 배우는 효과가 있었고, 서술자의 서술문도 문어체처럼 딱딱하기 보다는 나레이터가 '나'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기처럼 느껴지는 문장도 있어서 외워서 사용할 때 금방 금방 티가 나는(?) 그런 류의 책이었다.

그리트의 사랑얘기 뿐만 아니라 당시 17세기 미술 산업, 무역 상황은 어땠는지, 화가가 가족들을 건사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결혼을 하면 다른 여자한테 눈돌리기 일쑤고, 여자들은 남편 바가지 긁기 바쁜 그런 복닥한 삶의 단편도 보이고, 현실적인 장모의 기대와 어긋나는 화가 사위의 모습도 보이고, 히스테릭하고 편하게 살고 싶어하면서도 한편 남편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매번 스트레스 한 껏 받으며 애를 열 두 번 낳은 카타리나의 모습도 어떤 면에서는 이게 17세기 이야긴가 싶게 현실적으로 느껴오는 삶의 버거움 같은 게 보였다. 종종, 느리게 살았던 우리 이전 조상님의 삶으로 돌아가자고 하는데.. 글쎄다.. 그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귀족 아닌 여자들은 평생 귀고리같은 걸 걸치고 다닐 여유가 없을 것이다.

17세기면 왠지 오래된 얘긴 것 같아서 시간개념 상실하고, 루터의 개혁으로 구교가 있었다는 사실도 '으잉?' 싶기도 했었지만, 신교와 구교 사이의 어떤 오해 등으로 주인공이 겪는 생활에서의 갈등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었고, 당시의 정숙한 여인이란 어땠을 것인데 그보다 그리트가 살짝 더 정숙하려고 노력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고, 우라나라와는 다르게 푸줏간을 하는 상인들의 계급이 적어도 하녀보다도 낮은 천민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도 지나가는 김에 생각해보았다.

하도 옷감으로서 mantle이란 단어를 많이 보아서 mantle plume이란 단어를 봐도 옷감이 꿈틀거리는 것 처럼 느껴진다. 단어가 어느 하나 반복되는 게 있으면 그 책의 키워드 처럼 느껴지는데 이번 이 책에서는 mantle이 그렇게 자주 나오더라.

Harry Potter하면 Cauldron이 그렇게 생각나더니만(리키 콜드런 때문에) 이제 이 책 하면 yellow mantle과 green dress아니면, blue mantle이 생각날 듯 하다.

어쨌든 7년 숙원 사업을 끝내니 뿌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