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고, 역자의 작품해설을 읽기 전에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재미있는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상징이 가득한 책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피어스 인버라리티의 이름이 나올 때부터. 번역본을 읽으면서 원서에서의 어떤 문장을 이렇게 번역한걸까를 자꾸 생각하게 되다 보니 더 재미있었던 거 같다. 피어스라는 이름은 Pierce 같은 이름이겠지만, 이름을 처음 읽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fierce, inveracity 였다. 정신과 의사 힐라리어스에선 Hilarious를. Shadow를 왜 역자는 고유명사 "섀도"와 그 이후 '그림자'로 번역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이름이라고 해도 '그림자'라는 프로그램을 지칭하며 동시에 피어스의 부고나 현실의 그림자 같은 우리가 모르는 진실 등등을 독자도 함께 유추할 수 있도록 아예 모두 '그림자'로 이야기하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다. LSD라는 마약이름에서는 비틀즈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가 떠올랐고, 나도 함께 어지러워졌다. 에디파의 남편 무초는 별거 없어보이는데도 이름이 mucho(much)로 불리워지는 것 같았고, San Narciso라는 도시 이름과 Eco hotel이 쌍으로 의미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으며.. 나르시스를 사랑한 요정 에코의 울림과 약음기가 달린 나팔이 낼 소리도 연관성이 있어보였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G.K. 체스터턴의 목요일이었던 남자 처럼, 이 책도 우리가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또다른 이면, 또다른 진실, 또다른 조직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재미있다. 더구나 이 비공식 우편 조직으로 언뜻 언뜻 드러나는 '트리스테로'라는 조직은 무정부주의자들의 암살 조직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름없는 자, 게이나 창녀, 나이든 노인, 술주정뱅이, 가난한 예술가등의 소통을 위한, 그들의 편이 되어 서는 그런 조직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LSD로 제 정신이 아닌 무초와 가해자일지도 모를 힐라리어스의 트라우마가 트리스테로와는 별개로 마음이 아팠다.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 이후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표면 밑에 (특히 미국의, 소설의 배경이니까) 평범한 삶을 붙잡고 제대로 사려고 노력해보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마약이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라도 목숨을 부지하며 자신을 견디어 내며 살고 있는 거였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유태인이든, 나치든. 그러니까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말이다. 히틀러 힐라리어스를 보면 가해의 표지를 이름에 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어쩌면 가해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었으리라는 상상을 하면 히틀러 힐라리어스도 결국은 '혁명적인' 시스템 중 하나였을 뿐이다. 나는 이사람이 자살폭탄처럼 느껴졌다.

약음기가 달린 나팔 기호를 통해 트리스테로가 어떤 조직일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 민간인, 없이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이름 없는 꽃'이라 불려도 좋을 나약한 사람들을 서로 연결 시키는 조직을 상징하는 거라면, 그 조직 내에서의 소통을 상징하는 거라면... 그걸 한편으로 생각하면 약음기가 달려야 한다는 것이 비밀스러움을 풍길진 몰라도 참 안쓰럽다고도 느껴진다. 소리를 잔뜩 죽여놓은 나팔 소리가 떠오르니까. 기타에 약음기를 달아놓으면 한밤중에 쳐도 좋을 만큼 소리가 작아지지 않는가. 약음기가 달린 나팔기호와 W.A.S.T.E를 낙서처럼 적고 드러내놓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반전처럼 동시에 제대로 내지 못하는 소리, 혹은 We Await Sillent Tristero's Empire를 나타내는 말이 그냥 waste일 뿐임을 (안타깝게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결말이 의미심장해 경매장에서 우표를 사기로 했던 트리스테로와 관련이 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다 읽은 지금도 많이 궁금하긴 하하다. 인버라리티의 이름에서 inveracity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이 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사람이 '피어스 구라쟁이씨'가 되어서 등장을 하면 여태까지 트리스테로에 대해서 장미의 이름의 숨겨진 장서에서 느꼈던 신비로움과 같은 그런 느낌이 산산조각 나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사실은 죽지 않은 것으로 피어스가 나타나 전혀 다른 이야기로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여자아이와 도망간 변호사라고 해도 충격일 것 같고, 전혀 모르겠는 평범한 사람이거나, 지친 얼굴로 편지를 전해달라고 했던 노인이라고 해도 놀라울 거 같다. 궁금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트리스테로에 대해 실마리라도 알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에디파나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더 의미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하고 편안하고 고요히 터퍼웨어에 밀폐된 삶을 살다가, 가장된 '프리웨이'에서 진정한 프리덤을 찾는 여정이었노라고 느꼈다면!

 

약간은, 어디에서 열려 어디로 나아가는 길일지 몹시 두렵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