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더 있으면 더 주고 싶은 책. 아니 감히 제가 평가를 하기라도 할 수 있을런지.. 
정말 잘 읽은 책입니다. 스포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다 단숨에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이 특이해서 읽어봐야지 생각만하고 있었는데, 정말 신선하고 재미있습니다. 묘사도 일품이고, 주인공이 시인이라 그런지 시적이거나 표현이 적절해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그런 문장들. 거기다 단순히 ’재미있다’고 하기에는 생각해 볼만한 여러 문제, 사상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처음엔 이 책을 헐리우드 영화처럼, 정부, 무정부주의자간 대결구도로 보았습니다만, 이마저도 전복되는 모든 반전들이 한바탕 장자지몽을 겪는 기분으로 얼떨떨하게 만듦니다. 매 장마다 반전이 있어서 중간에 읽기를 도무지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반전들이 모여서 한 번 더 반전, 그 반전의 결론조차도 반전입니다.

 그렇다고 엄청난 스케일로 압도하는, 그런데 진리는 알고보면 단순한 그런 류의 책도 아닙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Robert Harris의 ’the Ghost Writer’를 연상시켰습니다. 이 책을 저는 품격있는 스릴러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파헤칠수록 커지고, 적절한 반전도 있고. 폴란스키 감독의 동명의 영화도 재미있게 봤고, 스릴러의 교본이구나, 느꼈던 영화였습니다. 물론 재미있는 요소가 좀 부족하고 호러스러운 건 없는 예상외의 부분에 당황도 했지만요.

 하지만 ’유령작가’도 ’목요일이었던 남자’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스포일을 하자면; 이 책에선 아무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 살인사건을 다룬 추리소설도 아닙니다. 무정부주의자 비밀 결사조직을 보여줍니다. 언뜻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사건이 떠오를 만한, 인간폭탄테러를 계획하는 단체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정치, 역사를 빙자한 소설도 아닙니다. ’악몽’이라고 해서 무슨 괴물, 귀신이 등장해 홀리는 류의 책도 아니고, ’정신병자’가 나오는 책도 아닙니다. 호러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많이 나오는데, 시집이나 체스터톤이나 사임의 에세이집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류의 책을 읽을 때 느끼는 스릴, 감동이 모두 이 책에 있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아직도 얼떨떨할 정도로 재밌습니다. 또 스포일을 하자면... 차가 없어도, 마차를 타고도 서부영화나 헐리우드 영화처럼 재미있는 추격씬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감동, 하니 생각나는데 구운몽이나 홍길동전, 박씨전 같은 우리나라 고전 판타지물(판타지 아닙니까? ^^;)도 같이 연상이 되는 책이었지만, 뭐랄까 말해버리면 안될 거 같은 그런 독특한 재미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고전과는 다른 그런 어떤... 그리고 19세기 다른 소설들과도 다른 그런 어떤 재미가 있습니다. 정말 독특합니다.

 읽다보면 여러번 사임의 언변에 읽는 사람의 논리가 흐려지기도 합니다.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요.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야기 전개상 없어선 안될부분..까진 아니지만 나름 인상적인 .. 사임이 부자가 진정 무정부주의자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아나키스트들에는 가난한 농부, 노동자들이 많은데 이것에 대해 주인공 사임(Syme)은 의견을 달리합니다. 오히려 순박한 그들은 무정부주의에 이용당하고, 사회주의에 귀가 멀어서 이조직에 들어와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진정 아나키스트들은 부유하고, 또 학식있는 사람들인데 그 이유는 그들은 정부에 비협조적이고, 정부에게 언제든 등돌릴 준비가 되어있다는 식의 논리로 이야기합니다. 사실 체스터톤이 무정부주의자를 옹호하는 건지 반대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고 느꼈습니다(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사임은 가정이 아나키스러운 가정에서 자라 무정부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보여집니다만 이 대화를 보면, 정말은 무정부주의와 무정부주의자의 행동의 진정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순박한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테러를 저지르는지, 그들이 정말로 정부에 대해 분노한다기 보다는 사실 비밀조직의 상부에 의해 무력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생각에 동의하게 됩니다. 그 생각에 도달하는 순간 독자로서, 무정부주의자들의 Secret Council도 결국 정부와 같은 조직의 한 형태처럼 보여지고, 정부보다도 그 자체로서 이미 의뭉스러워보이게 되어 버리는 겁니다.

 제 짧은 표현으로는 여기서 더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정말 최고, 일품인, 진짜 모범적인 고전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