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책인데 읽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기발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한 자기 변명이랄까... 자기 포기처럼 들려... 1/3 이후 읽는 템포가 떨어짐.

 

p12. <제품 규격 및 사양>성격 : 때에 따라 다름

 

p39. 그러자 아버니의 말이 마치 텔레비전에게 "네가 처음부터 식빵을 굽지 못했던 건 아니란 말이지." 하즌 것처럼 들렸다. 종일 켜 둔 텔레비전 위에 식빵을 올려놓으면 열기 때문에 조금 따뜻해질 수는 있다. 줄곧 영어를 붙잡고 있는데도 토익 점수가 좀체 오르지 않자 텔레비전이 토스터를 흉내 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44. 아무래도 손등에 드러난 오선지에서 열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발열 반응은 모든 오류의 기본이다.

 

p46. 지금도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조금씩 뻗다 보면 어느 순간 플라스틱 자가 나타나 손등을 내려칠 것만 같다. 그걸 시작으로 몸에서는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p56. 그것마저도 철수는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면 "남의 새끼라면 시원하게 욕이라도 해 줄 텐데."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p56. 고객 센터가 하는 일은 잘못된 제품을 바꿔 주는 것보다 잘못된 사용법을 올바르게 잡아 주는 쪽이 훨씬 많다. 마찬가지로 철수를 바꾸는 게 아니라 철수를 사용하는 방법을 바꾼다면, 어쩌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지도 모른다.

 

p65. 철수에겐 사용자의 마음을 꿰뚤어 보는 기능이 없었다. 그러니 그녀들에게 철수는 언제나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p70. 그러므로 철수는, 다른 제품의 사용 설명서가 아니라 철수 사용 설명서를 읽고 사용해야 한다.

 

p107. 특히 가족 모드에서는 여러 가지 역할이 한꺼번에 만족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좋은 남편과 효자 기능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여,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효자니까 당연히 좋은 가장이겠지, 돈을 잘 버니까 아이에게도 자상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모두 개별 기능입니다

 

p113. 엄마가 드라마였다면 아버지는 뉴스였다. 아버지의 사용 설명서에는 저녁마다 뉴스를 절대 빼먹지 말 것이란 주의 사항이 첫 번째로 나올 것이다.

 

p115. "너도 뉴스에 나오고 싶어서 그러냐?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응?"

 

p130. 어쨌든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철수의 결혼 기능이 아무래도 옵션이 아니라 기본 사양인 모양이었다.

 

p141. "제가 냉장이나 냉동 기능은 없는데요. 그냥 찬장으로 써 주시면 안 될까요?" 냉장고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교환이나 환불 시기는 이미 지났다. 어쩌면 품질보증 기간마저 한참 지나고 난 후일지도 모른다.

 

p143. 그러고 보면 불량품이란 어디에도 없는 것인지 모른다. 오직 그것을 불량하게 사용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

 

p161. 해열제 사용을 고려해야 하는 온도는 38.3도 이상일 때입니다. 열은 고장이 아니라 고장을 나타내는 신호입니다.

 

p191. 철수를 사용자의 목적에 맞게 개조하는 것보다 목적에 맞는 다른 제품을 구입하는 편이 더 효과적입니다.

- 큭큭큭, 반품!

 

p215.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완벽한 제품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건 철수도, 철수를 사용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용 설명서는 불량품이 아닌 정상 제품이 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 이것이 아죽 간단한 이 작품의 주제인 듯.

 

p218. 정확한 사용 설명서는 사용되는 제품에게도,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모두 상처를 주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