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마주보고 있는 포옹한 남녀 유골이 이탈리아 만토바 근처 발다로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내용을 모티브삼아 빙하기를 배경으로 크로마뇽인 소녀가 사랑을 발견해가는 그 과정을 적은 이야기이다.
물가사람의 무리 속에서 약초어미의 양딸로 살아가고 있는 릴라는 엄마 이와티와 함께 약초를 캐러갔다가 바위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첫 만남이후 그의 모습을 떨쳐낼 수 없는 릴라, 그것을 눈치챈 물가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내쫓김을 당한다. 물가사람과 바위사람들은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면서 사이가 나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방랑하던 릴라는 다시 바위사람인 그를 만나게 되고, 절루가에서 절자만 뺀 루가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애완동물처럼 목줄을 걸고 데리고 다닌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는 조심스럽게 사랑이 다가오는 것이다.
작고 얇은 책이다. 소설이라 읽기도 매우 쉽다. 빙하기니 크로마뇽인이니 하는 배경과 등장인물이라니 생각도 못한 시대의 이야기라서 다소 생뚱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었지만 그 내용만큼은 전혀 생소하지 않은 주제인 사랑을 말하고 있다. 사랑이 다가오는 그 시작점에서 무르익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 사랑의 절정 그 완성의 시간들을 아주 공감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화성남자 금성여자라는 책도 있었다는데, 여기 이 책을 보아도 여자를 상징하는 물가사람과 남자를 상징하는 바위사람은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렇게 서로의 생각만을 요구하게 되는 릴라와 루가이지만 점차로 서로를 이해해가게 되고, 서로의 다른 점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사랑은 완성되어진다.
[사랑이 다가오는 것은 우연이지만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은 운명이다/37쪽] 릴라와 루가에게 사랑은 우연의 모습으로 다가왔지만 그들은 그 우연을 운명으로 만들어내었고, 그것이 바로 사랑을 완성시키고 지켜낼 수 있었던 이유가 되었다. 숱한 우연들 속에 운명으로 남을 사랑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선사되는 것이었던 거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말처럼 '원래 하나였던 반쪽을 다시 찾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존재였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대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다/85쪽] 물가사람이었던 릴라는 매일의 꽃을 선물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바위사람 루가는 그녀가 더 큰 선물을 받아야만이 행복함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맘모스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다. 애초에 너무도 다른 릴라와 루가,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 깊어가는 사랑은 열매를 맺는다.
사랑의 과정을 어쩌면 이리도 잘 그려내었는지 재미나게 읽었다. 남자와 여자, 생각하는 방식부터가 다르다고 하는데, 그 서로의 다름을 확연히 알게 해주는 책이다. 그리하여 그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사랑은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지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닮아가는 것이 사랑이 아닐런지.. 사랑은 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너이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려는 모습 속에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완성되어지는 그런 것이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이자, 굳건한 의지이며, 진지한 노력이다/167쪽] 사랑한다는 것은 시간을 나누는 것이라며 자신의 시간을 상대에게 건네고 상대의 시간을 나누어 받으며 같은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멋진 글귀가 머릿속을 오랫동안 맴돌게 되는 책이다.
[인상적인 구절]
사랑하는 사이에도 거짓말이 오간다. 아니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거짓말이 필요하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거짓말이다. 생선회를 보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돋는 여자도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기꺼이 생선회 집으로 들어선다.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솔직함은 거짓말보다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너무 살이 쪘어.', '너의 눈은 작아.' 같은 솔직함 말이다. 마침내 사랑이 식었을 때 사람들은 가장 솔직해진다. '나는 더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아.'
- 14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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