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시절 속에는 빼빼마른 말라깽이의 주근깨 투성이인 빨강머리를 가졌던 앤이 가득히 자리하고 있다.  빨강머리 앤을 처음 만난 것은 티비를 통해 방영되던 만화에서 시작하지만 그런 앤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들기 시작한 것은 앤에 대한 사랑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던 친구와의 우정을 쌓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앤을 이야기하면서 소녀시절을 보냈고, 그 친구를 통해 나는 빨강머리 앤의 이야기가 있는 책을 빌려 읽었었다.  그리고는 어른이 되면서 앤에 대한 사랑이 빛바래어진 것은 아니지만 마음 한 모퉁이로 그 사랑과 그리움을 잠시 옮겨놓게 되었다.

 

  밀쳐둔 사랑이었지만, 앤을 잊은 것은 아니었기에 언젠가는 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줄 시간을 꼭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차에 그 실행의 몸짓을 하게 된 것이다.  몇 십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  드문드문 기억나는 줄거리들 사이로 이 책의 글자 하나 하나가 비집고 들어온다.   다시 만난 나의 빨강머리 앤은 여전히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 사랑에 너무나 행복해져버리는 기쁨을 감당할 수 없을만큼...

 

  고단하기만 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빨강머리 앤은 진짜 가족을 가질 수 있는 마릴라와 매슈와의 만남이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에 더이상의 상처가 헤집고 들어올 수 없도록 마릴라와 매슈가 보여준 앤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고맙웁고 고마워서 그들을 꼭 껴안아 주고 싶다.  사실, 빨강머리 앤에 대한 줄거리를 여기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행동일만큼 누구나가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러하기에 몽고메리의 앤의 삶 이야기를 늘어놓지는 않을 생각이다.  다만 빨강머리 앤의 이야기를 통해 세계의 소녀들이 느꼈을 행복에 대해서만은 떠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도 앤이 있었기에 행복했던 소녀시절을 보낼 수 있었고, 세계의 많은 소녀들이 몽고메리를 통해 앤을 소개받음으로 영원한 친구 앤을 심장 속에 새겨넣을 수 있었다.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친구,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니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친구 빨강머리의 앤을 소녀가 아닌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의 시간에 만난다고 해도 그 세월의 틈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시절 누구나 반드시 앤을 만나야 하고, 그 그리움으로 아름다운 영혼은 지속되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빨강머리 앤을 왜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그 물음 이전에 먼저 몽고메리의 앤을 만나보라고, 그러면 그 사랑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경험해보지 않고는 앤에 대한 그 사랑을 어찌 적나라하게 내어보일 수 있다는 것인지 자신할 수 없기에 말이다.  빨강머리 앤은 우리들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그러하기에 행복을 원하는 모든 이들이라면 당연히 빨강머리 앤을 만나면 된다.  그러면 행복은 당신 곁에 와서 손을 잡고 있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