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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동을 가본적이 있다. 삶을 정리하면서 그 마지막 시간을 만나기 위한 곳은 유난히 조용한 느낌의 곳이었다는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갑자기 잦게 찾아든 소화불량으로 동네 병원을 찾았다가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소리를 듣고는 입원하게된 어느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의 늙으신 노모가 병원 복도에서 새벽에 눈물을 소리없이 삼켜내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고, 그분의 귀엽고 사랑스럽던 어린 자녀들이 엄마의 병문안을 해맑게 왔던 모습을 본 적도 있다. 그리고 그분 남편의 아내를 먼저 보내야 하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가족과 병원에서는 그분의 병명을 본인에게 알려주지 않은 채, 숨겼었다. 그리고 나는 며칠 후, 그분이 죽음을 맞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었다. 그분은 죽음 직전 자신의 병 상태를 들으며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알고 가셨을까, 아니면 가족들이 끝끝내 숨겼을까.....

<코끼리의 등>에 등장하는 중년의 후지야마 씨는 몸의 이상을 느껴 찾아간 병원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폐암 말기이며 이미 다른 곳으로도 전이되어버린 상태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되는 당사자의 충격과 분노 그리고 찾아드는 원망과 받아들임의 시간은 결코 쉬운 시간일 수 없을 것임을 짐작하게 된다. 울고싶지 않지만 눈물이 나올 것이며, 통증에 굴복하고싶지 않지만 아픔에 절망하게 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 이제 더이상 삶이라는 것을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잊혀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후지야마 씨는 말한다. 죽는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잊혀진다는 것이 두렵다고 그래서 자신의 삶과 연관이 된 사람들을 만나 유서를 전하겠다는 결심을 하게되는 후지야마 씨이다. 글로 종이에 쓰여지는 유서가 아니라 만남을 통한 눈짓과 몸짓과 말투로.....잊혀지지 않기 위해 그들에게 기억시켜줄 마지막 모습으로......더 많은 사람들이 그가 죽어 없어진 시간 속에서도 그를 기억할 수 있도록......

후지야마 씨가 처음으로 찾아간 사람은 첫사랑의 여인이었다. 그리고는 학창시절 다툼이후 몇 십년이 흐르도록 만난적이 없던 학창시절 친구와 한때는 연인이었으나 그 여인의 사랑을 배신했던 것에 대한 사과를 위해 옛 연인을 찾아가기도 하고, 자신이 무너뜨린 거래처 회사의 사장, 하룻밤 실수로 보내었던 직장 동료, 아버지의 죽음이후 계모때문에 소원했던 형제들......후지야마 씨는 그렇게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하나씩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알게 되었던 후지야마 씨는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았다. 얼마 남지 못한 시간을 병원에서 누워지낸 채 마무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그였다.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 그이지만, 그나마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정도인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말이다.

후지야마 씨는 아내를 사랑했다. 그럼에도 에쓰코라는 애인을 옆에 두고 있었던 그였다. 아내도 사랑하고 애인도 사랑한 그는 아들에게도, 아내에게도 에쓰코의 존재를 이야기 해주고 떠난다. 그가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 호스피스 병원에 있을 때, 에쓰코 씨가 찾아왔었고, 그는 아내에게 애인이라고 그녀를 소개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 모두가 힘겨운 슬픔을 감당해야 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삼켜야 하는 시간들이 많았을 그들,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후지야마 씨는 소중한 가족의 품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후지야마 씨가 써내려가는 유서, 그가 삶을 정리하면서 만나게 되는 옛시절의 사람들, 그는 남겨지는 사람들 기억 속에 그 빈자리가 아쉬움이 되는 존재로 남아지기를 바랐다. 그가 죽어 없어져 버린 삶의 시간 속에서도 남겨진 사람들이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었으면하고 바랐다.

삶이란 추억의 자국들인 것 같다. 더 많은 추억들을 남겨진 사람들에게 새겨놓아주는 일, 그것만이 죽음을 두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간 빈 자리의 온기 잃은 쓸쓸한 차가움이 아니라, 떠나갔지만 추억의 온기로 여전히 그 자리가 채워져 있는 것, 삶이란 나와 인연진 사람들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내는 아니 만들어내어야 하는 것인 것 같다. 삶이란 것이 눈부시게 반사되어지기 위해서는 성공이 아니라, 부가 아니라, 나와 인연으로 맺어지게 되는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들을 갖는 것, 많은 이야기를 갖는 것, 그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덮는 이 시간, 삶이 더욱 소중해진다. 인연이 더욱 소중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