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태양이 떠오르고 그렇게 어제와 별다를 것 없는 오늘의 일상이 이어진다.  8월의 목가적인 무던하게 평범한 하루, 어제의 하늘과 어제의 새가 지저귀고 있는 어제와 닮은 평화로운 오늘의 하루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며 가을과 겨울이 왔지만, 무언가 특출날 것이 없는 똑같은 풍경의 사진 두 장의 느낌, 이 책이 그랬다.

 

  요시다 슈이치의 책들을 읽고 있는 요즘, 그 중에서도 가장 평범한 일상들을 이야기하는, 무료하다는 느낌이 들만큼이나 어제와 같은 오늘의 느낌이 드는 그런 책이었다.  잔잔한 강가의 여름 햇살로 부서지는 풍경, 그냥 아주 평범한 풍경, 심심할만큼 자극적인 맛이 없는 싱거운 느낌의 풍경들, 그런데 말이다.  이 책 속에는 출생의 비밀도 있고, 동성애도 있고, 불륜도 있다.  자극적인 그 소재들이 있는데도 희한하게 평범한 일상들의 집합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이상하다.

  너무나 심심한 싱거운 책이었는데도,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느리지 않더라.  금세 그 마지막 장까지 넘겨버릴 수 있으니, 이 책 무료한 책이었는지 재밌는 책이었는지 헷갈린다.

 

  레이는 아르바이트만 하는 남자 친구 나오즈미가 있다.  나오즈미에게는 고이치라는 형과 잡지사에서 편집 일을 하던 형수 게이코가 있다.   이 네 사람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일상이 담긴 이야기이다. 

  나오즈미와 고이치는 친형제 관계가 아니다.  고이치의 이모에게서 낳은 자식이 나오즈미이고, 그를 양자로 들여 키우고 있는 고이치의 부모님이다.  하지만 어린시절, 나오즈미는 양엄마와 함께 어떤 남자를 만난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남자, 야나기타와 나오즈미가 어른이 되어서 만나게 되던 그 장면 묘사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오즈미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는 야나기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오즈미보다 더 놀라움을 느꼈다.  나오즈미가 친부를 원망하다가 애처롭게 보게되는 부분은 사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그리고 양엄마가 선택한 결정과 마음들에도 난 역시 이해하고 싶지 않다. 

 

  고이치, 아내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 다나베의 고백을 듣게 되고, 자신 역시도 그를 남다른 감정으로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을 숨겨두고 이루어낸 우정이었지만, 우정 위를 비집고 나오는 사랑을 어쩌지 못한 그들이었다.  고이치의 아내, 게이코 역시 대학시절 애인이었던 사람을 다시 만나고 있다.  그 사람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 인연이 닳고 닳아질 때까지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이치에게 자신과 이루고 있는 가정의 울타리가 자신없다고 말하면서도 가정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게이코, 어린시절 전업주부로만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 안정적인 가정의 울타리 속에서 사는 그녀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그리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그 말이 겹쳐지면서 떠오른다.  고이치도 게이코도 그들 사이의 끈을 지속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각자가 또 다른 숨겨진 끈들을 움켜쥐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고이치, 게이코, 레이, 나오즈미, 이 네 명의 등장인물들이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들이 무료할만큼 어제와 똑같은 풍경의 사진처럼 평범해 보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별다를 것 없는 똑같은 하루들의 더미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동생애든 불륜이든 출생의 비밀이든 무엇이든 간에 결국 삶의 모습들이고, 그 모습들을 이어가는 관계의 모습들이 일상인 것 같다.  서로에게 얼만큼 보여주고 혹은 얼만큼 숨기면서 그러면서 관계를 유지해가는 것 말이다.  참으로 심심할 정도로 무료한 느낌의 책이었는데도 중단없이 마지막 장까지 순식간에 넘기게 만든 책, 이것이 바로 요시다 슈이치의 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