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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리의 전화를 받았다. 만나고 싶다던 그녀의 전화, 사실 무척 어리둥절하고 놀랐지만 생각해보니 겐고와의 결혼소식을 전하기 위함이 아닐까란 사실이 떠올랐다. 겐고, 나에게는 이복오빠가 되는 사람이다. 중학생때쯤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엄마가 할머니의 장례식에 가야한다고 했고, 나는 그곳에서 이복오빠인 겐고를 처음 만났다. 아빠는 겐고의 엄마와 이혼을 하고 나의 엄마와 재혼을 하셨다. 아빠가 같은 겐고와 나이지만, 사실 그닥 친밀한 형재애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겐고의 엄마는 우리들을 미워하고 있었으니 겐고에게 역시 우리들은 미움의 대상이었을테니 말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이어지는 시간들로 엮어질 수는 없었다. 여전히 각자의 삶에만 충실한 채 몇 년에 한 번정도 드문드문 만나는 것만이 전부였다.

유카리는 겐고의 애인이다. 그 둘의 사이는 고등학생때부터이니 꽤나 긴 시간을 함께 한 연인이다. 그들의 결혼 소식을 전해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겐고의 실종 소식을 들었다. 겐고가 취재차 나라로 떠난 이후, 소식이 두절되었다고 그를 찾아 함께 나라로 가자는 유카리의 이야기였다. 사실 가고싶지 않은 여행이다. 여행 당일 전에 겐고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어 이 여행이 무산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하다. 나는 여행이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갈 때마다 우울해지는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다. 나는 나의 평범한 일상에서 일탈되는 것이 싫다. 자유가 허용되는 여행, 나의 일상과는 다른 일들이 일어날 여행, 하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과의 여행이니 나의 모든 모습을 내어보일 필요도 없음에 그나마의 위안을 삼자.

유카리가 유카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라는 말일까.

유카리는 며칠 전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그녀는 나의 앞에서 말하고 있다. 자신은 유카리가 아니라 다에코이며, 겐고와 유카리의 고등학교 동창생이라면서...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삼각관계였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다에코는 겐고를 사랑했고, 겐고와 유카리는 서로의 연인이었고...

["좋아하게 되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지만 헤어지는 데는 이유가 필요하거든. 아니면 끝낼 수 없잖아."/47쪽]

다에코가 처음 유카리의 행세를 했을 때, 겐고의 실종을 이야기했으며, 겐고와 헤어졌는데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싶어 그가 있는 나라에 가고싶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지금 다에코는 겐고가 유카리에게 보낸 사진과 수첩을 보이며 실은 이 모든 시나리오는 겐고가 만든 것이라며 자신의 동생인 시즈카와 함께 나라에 와주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나라의 정해진 여행 코스를 따라서 겐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나라에서 겐고를 만났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이야기라는 말인가. 이 여행의 시나리오가 겐고의 것이 아닌 다에코의 생각이었다니, 혼란스럽다. 다에코는 연락두절이 된 겐고를 만나기 위해 나를 이용한 것이었다. 내가 간다면 겐고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나를 이 여행에 끌어들이기 위해 유카리인 척 했고, 겐고가 실종되었다고 거짓말을 했었고, 그런 후에는 이 모든 여행 시나리오가 실은 겐고의 생각이었다고 하더니 다에코의 모든 말들이 거짓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행의 진실은 무엇이라는 것일까.

다에코의 집을 나온 유카리는 자살을 하듯이 다가오는 트럭에 차를 운행시켰다고 한다. 유카리의 죽음에대한 책임을 겐고에게 묻고싶었던 다에코. 그리고 그녀들은 그들의 흐트러짐없던 삼각형의 관계 속에서 떨어져나가려고 했던, 겐고의 그 이유가 된 여인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그의 입을 통해 확인받고싶었던 겐고가 유카리를 버리면서까지 사랑했던 겐고의 여인이 누구인지 말이다. 그렇게 완벽한 삼각형처럼 서로가 서로의 의지로 엮여져 있던 다에코, 겐고, 유카리의 관계를 무너뜨린 그녀가 누구인지를 말이다. 거기에 꼭 내가 있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들 인생에조차 주역이 되기를 겁냈다/159쪽] 나는 내 인생에서조차 주역으로 살아가는 일이 두려웠다. 그렇다면 이 여행에서 나는 어떤 존재였던 것일까. 객연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주연이었던 것일까. 다에코는 겐고를 만나기 위해 나를 미끼로 이용했다. 이 여행의 중심은 분명코 내가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겐고와 함께 있다. 그리고 겐고가 사랑하고 있다는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곳으로 가고 있다. 다에코가 남긴 쪽지 속에서 그 사람이, 그녀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리고 겐고의 고백을 듣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충격으로 다가올 그 이야기에 나는 무덤덤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겐고와 함께 그 사람을 어떤 표정으로 만나야 할지 사실, 모르겠다. 그녀 또한 나를 보며 어떤 모습을 지을지 역시 모르겠다. 나는 이 이야기가 끝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새로운 시작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와 마주선 나는, 이 순간 겐고가 사랑하는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