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게 된다면 가장 먼저 다루고 싶었던 책이 바로 이승옥의 <무진기행>이었다. 늘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었다. '한국 소설 사상 최고의 단편', '가장 아름답고 영롱한 문체의 단편'등과 같은 수많은 찬사들을 잠시 뒤로 제쳐두고라도 이 몇개의 단편들은 그 자체로 내게 가장 중요한 소설로 어린시절부터 자리하고 있었다. 현 시대를 대변하는데 소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사람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은밀한 자기 농담과 인간과 사회를 마주하는 요동치는 감정의 한계들을 어디까지 포착해 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슬픔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아름다운 글이란게 과연 얼마만큼 치유를 해줄 수 있는지. 무진에서 일어나는 슬픔들은 그 자체로 내게 치유로 다가왔었다.

 어린 감수성으로 성숙 된 자아를 발견하는 김승옥씨의 문장들은 말 그대로 현 시대의 청춘의 감수성을 그대로 간직한채 종이 위에 섬세하게 ？슷떳객？. 당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이라고 생각 할 수 있을 정도의 새련된 문체와 간결하면서 감수성을 건들이는 솔직한 문장들은 "이 과연 1960년대 소설이 맞는지" 다시금 작가의 필로그래피를 살펴보게 만든다.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집필가로써의 고민과 사랑을 한다는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 등의 누구나 공감하고 상념에 젖어 봤을 법한 이야기들을 특유의 재치있는 유머로 독자와 대화하듯 빠져들게 만든다. 

단편들 중 가장많이 단편집의 주 제목으로 쓰이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단편<무진기행>은 <서울 1964년 겨울>과 함께 중요한 작품으로 보여진다. 물론 다른 단편들도 훌륭하지만, 무진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기폭과 절제되고 함축된 감성적 글쓰기의 절정이 드러나는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초반에 무진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표현되는 부분은 여러 출판사와 책 표지를 수도없이 달굴정도로 그 자체로 명진한 아름다운 글쓰기의 절정으로 불려진다. 가족들을 두고서 잠시 머무르기 위해 온 무진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각자의 미묘한 감정들과 왜곡된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해서, 그 공간적 배경은 이미 주인공의 내적 심리와 하나가 되어 짙은 안개처럼 습하게 독자들의 가슴을 스며든다.  시각적으로는 계속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내면의 감성은 아직 청춘에 머물러 있곤 했던. 삶을 살아 간다는 것에 대한 고뇌와 그 뜻을 이루고저 주인공의 팔깃을 붙잡는 무진의 그녀의 미묘한 감성은 따뜻한 커피 위의 옅은 거품처럼 흐릿하지만 분명하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들은 '시時'의 위로를 받아서 나를 치유하고 다시 본질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말은 그냥 아름다움으로 끝나지만, 슬픔을 위로하는 말은 그 자체로 잔인한 날선 손톱을 등 뒤로 감추고 있다고 말이다. 김승옥씨의 <무진기행>은 쓸쓸한 겨울의 입김같이 서늘하기도 하고, 방 구석에 누워 바라보는 천장의 한마리의 파리처럼 고독하고 건조하다. 내게 청춘이 그랬다. 내 청춘은 우뚝 쏟은 높은 빌딩에 기대고 있지만, 햇볕에 비친 그 푸른색 그림자에 내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내가 지난 나의 청춘에게 물었다."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 다섯 살 입니다."<서울 1964년 겨울, 286p>. -ozwon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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