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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고등학교 시절이었을 거다. 캐빈 코스트너라는 인물을 <늑대와 춤을>에서 보게 된 건 말이다. 배경은 남북전쟁이었고, 케빈 코스트너가 인디언, 그러니까 아메리카 원주민들 속에 생활하는 이야기를 장대한 자연 속에 녹여낸 작품이었다. 그의 인디언 이름이 '늑대와 춤을'이었고 그 부족 사이에서 만나 사랑하는 여인 이름이 '주먹쥐고 일어나'였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의미 있다고 생각되었던 부분은 아마도 인간과 자연의 어우러짐일 것이다. 자연이라는 숭고한 대 장관을 영화 속에서 만나며 나직한 한숨이 나올 정도의 경탄을 금치 못했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연을 숭배하고, 존중하며 어우러지는 장면 장면들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이번에 만나게 된 작품은 무라야마 유카 작가의 <날개>로 서두부터 자연과 인간과의 어우러짐이, 존중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다.

마후유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엄마에게 저주의 말이 일상인 심한 학대를 받고 자랐다. 특이한 이름으로 친구들에게도 융화되지 못한 채 일본에서 고등교육을 마치자마자 엄마에게서,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하나로 도망치듯 뉴욕으로 왔다. 인종이 뒤섞이고, 소란스럽고, 범죄가 난무하지만 그렇기에 모든 것이 받아들여질 것만 같다. 하지만 역시 이곳에도 범죄와 인종차별은 있었다.

머피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마후유는 나이도 10살이나 많고 우디 앨런을 닮은 교수인 랠리와 열애 중이다. 이혼의 상처로 아들 팀과 살고 있는 랠리는 그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사랑한다며 속삭이지만, 머피는 자신의 감정이 굉장히 좋아한다와 사랑한다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 말을 되돌릴 수가 없다. 이런 행복 속에서도 잠자리에선 같은 악몽의 연속이다. 남자친구 랠리의 제안대로 정신과 도움도 받고 청혼도 받고 결혼식을 치르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건 또 다른 불행이었다. 이 모든 고통을 떠안고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았던 랠리의 아들 팀과 서로 의지하며 애리조나로 떠난다. 쉴 새 없이 연속적으로 떨어지는 절망 속에서 팀과 머피는 랠리의 가족 샌더슨 사람들과 살게 되고, 그 속에서도 시련은 있지만 팀과 머피는 상처를 조금식 치유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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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는 새끼를 낳아 기를 때, 애틋하게 자식을 먹여 키우지만 첫 비행에서는 무모할 정도로 몰아붙인다. 절벽으로, 절벽 끝으로 이끌다가 더 이상 앞으로 나가는 선택지가 없을 때에 새끼를 두고 날아가 버린다. 새끼는 황망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첫 비행을 시도하는 것이다. 자신한테 날개가 붙어 있는 줄은 알지만 먹이를 먹을 때 둥지 주변에서 살짝 파득거리는 것만이 전부였던 것이, 이제는 생존을 위한 과감한 날갯짓이 돼버리고 더 나아가 대자연 속에서 독수리가 독수리라는 이름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진정한 의미의 '날개'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을 한가지 만으로 규정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작품의 제목이 <날개>이고 서두에서는 소년에게 자연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서로 돕는 법을, 독수리 날개 깃털을 줍는 것으로 자신을 지키며 자유로운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수많은 것들을 짚고 넘어가고 있다. 인종차별, 범죄, 원주민 문제 등 미국이 이상적으로 보이던 것들이 사실은 오류 투성이라고 말이다.

머피는 일본을 부정하고 이상을 좇아 미국으로 왔다. 그녀는 곪을 대로 곪은 상처를 덮어버리고 외면하므로 인해 자신을 지키려고 위장하면서 말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강인해 보일지라도 언제든 곤두박질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연인 랠리가 마주 보도록 도움을 주선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픈 영혼의 소유자 머피는 그 상처 위에 더 큰 상처를 덧입고 랠리의 아들과 또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연의 대 서사를 통해, 대자연속 진리를 통해 자신과 마주 보는 법을, 나 자신을 선택하는 법을 깨닫게 되며 깊디깊은 상처를 조금씩은 회복할 수 있었다.

예전 영화 <늑대와 춤을> 속에서 느꼈던 자연의 웅장함, 자연을 어떻게 숭배해야 하는지, 왜 자연 속에서 진리를 찾으며, 그 진리가 나를 성장시키는지 이 작품 속의 '나바호'족의 문화와 정신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날개를 펼 수 있었고 둥지와도 같은 곳을 떠나면서 제대로 된 날갯짓을 할 수 있었다. 머피는 이제,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