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는 친일파를 낳고, 친일파는 탐관오리를 낳고,

탐관오리는 악덕기업인을 낳고, 악덕 기업인은 현이를 낳고.....

동학군은 애국투사를 낳고, 애국투사는 수위를 낳고, 수위는 도배장이를 낳고,

도배장이는 남상이를 낳고.....

이렇게 태생부터 동전의 양면성같은 가깝지만 결코 만나지지 않는 현과 남상이.

토악질나도록 가난한 남상이의 꿈은 의사이고,

더럽게도 부자인 현이의 꿈은 소설가이다.

남상이의 절교로 현의꿈이 의사로 바뀌는 순간,

그들의 이질감은 극과 극을 달린다.

가난이 선택이었던 현과,

자신의 태어나기도 훨씬 이전인 그 순간부터 죽음과도 같은 가난을 짊어진 남상이.

같을 수 있지만, 또한 같은 수 없었던 가난이고, 그들이다.

결국 의사가 된 현을 찾아가

선생님, 선생님을 외치며 아내의 죽음을 구걸하던 남상이는

자신의 가난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며, 그토록 원망하던 동학군의 후예를 받아들이게 된다.

박완서님의 소설이 갖는 특유의 시대적 풍경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이다.

간혹, 단어의 뜻을 알 수 없어 늘 곤혹을 치르지만 굳이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알지 못한다해도

문장을 통째 읽어내리다 보면 담박 그 의미를 알게 되는 묘한 서술법이다.

남상과 현의 빈과 부는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저항하려한 빈과 부의 차이는 그들의 선택이었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던 그들과는 상관없는 빈과 부는 현재의 그들에게 떠안을 수 밖에 없는 짐이되지만

반대로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버팀목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현의 오만과, 남상이의 몽상.

난 그렇게 생각한다.

오만과 몽상은 오만과 몽상일 뿐.

아무런 힘도 없다.

그들이 벗어나려 했던 건 빈과 부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게끔 하는 이유이자, 거스를 수 없는, 선택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