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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아마도 내가 ‘철’이라는 게 들 무렵부터 장애인에 대한 내 가슴속 인식이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선 곧잘 볼 수 있었던 우리와는 다른 아이들. 도와주어야 하는 아이들. 늘 위태로웠던 아이들. 어른이 된 지금도 자주는 아니지만 곧잘 그들을 마주 할 때면 동정 아닌 연민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찰나라도 그들에게 내가 호의적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또 다른 나의 양면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고, 호의적인 내 눈빛 뒤엔 감춰진 내 본심은 그들을 늘 꺼려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지현이의 부족함을 알아챈 순간 나머지의 29명이 지현이를 같이 이끌어 줘야함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지만 막상 지현이가 같은 조가 되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나에게 건넬 때면 늘 내 시선은 저만치로 달아나고, 같은 조원이라는 사실에 작은 한숨을 내쉬곤 한다. 이렇듯 내 머리와 마음을 따로 놀고 있다.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그들을 감싸 안아야 함엔 마땅하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는 것도 내 알량한 정의감이 아닐까 씁쓸해지곤 한다.

이 책 ‘창가의 토토’는 다시금 나에게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호의적으로 바꿔놓았다. 물론 일시적일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이 들긴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느꼈던 그 미적지근한 느낌은 오래도록 기억되지 않을까 한다.

첫 장에서 몇 장을 넘기면서는 이 작은 아이 토토에게 나는 여간 홀린 게 아니었다. 상상만으로도 토토의 그악스러움이 내 손발까지 간질간질 간질어 놓았고, 엉뚱한 그 아이가 내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아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지금의 지현이와 같이 그 아이가 내 눈앞에서 그런 행동들(토토가 퇴학을 당한 이유)을 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그 아이를 대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물론 지현이와 그 때의 토토가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왜 자꾸만 오버랩이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느낀 그때의 토토도 육안으로는 별 다른 이상이 없지만 너무나도 엉뚱하고, 상식 안에서는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과 말들을 서슴지 않고, 어른들의 눈엔 더없이 이상한 아이였던 것 같다.(지금의 지현이처럼) 물론 고바야시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에게도 고바야시 같은 선생님이 있었다. 이른 사춘기와 집안 문제로 어린 나이에도 늘 풀이 죽어 지내던 어느 날, 조용히 날 복도로 불러내어 나의 근황을 물어보시고는 걱정해주시고, 위로해주셨다.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속이 후련해지면서 알 수없는 친밀함을 느끼기도 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조용히 날 부르시더니 내 일기장을 책상위에 올려놓으시며 물으셨다. “넌 참 일기를 잘 쓰는구나. 아무래도 글 쓰는 재주가 남다른 것 같아. 내일부터는 일기 대신 글짓기를 해오는 게 어떻겠니?” 그 말을 듣는 그 순간까지 난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물론이고, 글을 쓴다는 게 어떤 건지 몰랐으며 태어나(내가 기억하기로는) 처음 듣는 칭찬이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글짓기를 했으며 방학 때도 일기 대신 글짓기를 했다. 물론 글짓기라 해봐야 지금의 장르로 따지자면 수필이고, 변변찮았겠지만 늘 나의 글 맨 밑줄엔 빨간 글씨로 잘한다, 잘한다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때부터 막연히 나의 꿈은 소설가가 되었고, 그때의 그런 일들이 없었다면 난 여전히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루한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때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의 지표를 바꿔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지금도 난 그 꿈을 향해 열심히 전진하는 중이며, 죽을 때까지 그때의 은사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것이다.

본디 스승이라 함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한 인간의 생을 한 순간에 뒤바꿔 놓을 수 있을 만큼 위대하고 전지전능한 존재이다(내 생각에는).

보육학을 배우면서 많은 관점에서 나의 시선이 바뀌었다. 가장 크게 바뀐 점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선생님으로서의 나, 한 인간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직업의식 같은 것이다. 특히나 어리면 어릴수록 그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그저 그들보다 더 많은 삶을 산 어른이 아니라 한 사람을 인도하는 지도자의 입장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도모에의 고바야시 교장처럼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걸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않고, 또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동하지 못하며 가슴속의 열정을 불사르지도 못하는 사람’ 이라는 것을 가르칠 줄 아는 선생님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고바야시의 열정이, 교육에 대한 이념이 미래에 선생님이 될지도 모를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 주고 있다.

청각장애우의 수화를 보고 ‘언젠가 나도 꼭 손으로 말하는 사람이 될 거야’ 라고 말하는 토토. 상대방을 손을 열심히 좇고 있는 아이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토토의 시선을 만들어 준게 바로 고바야시의 교육철학이 아니었을까?

나와는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의 이질감은 무시할 수 없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이질감을 이길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 존재한다. 다만, 그것을 인식하기도 이전에 이질감에 갇혀 배척하고, 무시하기에 급급하다.

나 또한 그렇다. 내 가슴은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지만 내 머리는 어쩔 수 없다고 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TV프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 라는 프로그램에서 양심냉장고라는 코너가 장안의 화제였다. 그만큼의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그 코너의 첫 회분에 나왔던 양심냉장고의 주인이 바로 장애인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로 옆에서도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어떻게 운전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몸이 불편한 모습이었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당연한 일, 비장애인들도 무시해버렸던 비장애인들을 위한 규칙을 장애인이 당연하단 듯이 지켜준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 그때 그 사람이 그냥 보통 사람이었더라도 그 프로그램이 그렇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까? 의구심이 든다.

이렇듯 비장애인이 우리조차도 무시하고 등한시 했던 것들을 그들이 바로 잡아주고, 느끼게 해주고, 고치게 해주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책의 말미에 작가후기에서는 그 때 도모에의 토토 친구들의 근황을 말해준다.

남들과는 조금씩 다른 그들이 모였었던 학교는 지금의 대안학교와 비슷하지 않을까싶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엔 대안학교는 그냥 학교가 아닌 정상적이지 못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인식이 강하다. 물론 나 자신도 부정할 순 없다.

얼마 전 TV프로그램에서 대안학교 아이들의 모습을 소소히 소개하던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편견과는 다르게 자신들의 꿈을 펼치고 있으며 너무나도 만족한다는 방송내용이었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 나의 인식 또한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대안학교를 찾은 아이들 중 훗날 성공한 삶을 사는 이들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고, 책 내용에서처럼 도모에를 졸업하고는 다른 어느 학교도 가지 않았다는 오에는 동양란 전문가가 되어 자신의 유년을 자랑스러워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이 나오고 난후부터 어떻게 키워지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청소년문제와 보호라는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예쁘게 잘 다듬어진 소나무분재 사진을 보여주시며 물으셨다. 이 소나무가 얼마일까요?

다들 만원에서부터 많게는 몇 백 만원까지 나오는 데로 대답을 드렸더니 하시는 말씀이 몇 억을 호가하는 소나무라 하였다. 어이가 없었다. 기껏 소나무 주제에........

하지만 교수님이 그 사진을 보여주시며 하신 말씀은 이 소나무가 처음 그 싹 잎을 틔웠을 때부터 몇 억을 호가하는 소나무였겠냐는 말씀이셨다. 이렇게 잘 다듬어 놓았기에 그 가격이 상상이 넘는 것이라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청소년들을 잘 다듬는 일이라 말씀하였던 수업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 ‘창가의 토토’를 읽으며 그 소나무 분재사진이 몇 번이고 회상되곤 했다.

이 책은 단순히 토토의 성장과정을 통해 우리네 아이들을 이해하자는 내용에 그치지 않는다. 토토의 성장과정에서 빼놓아서는 안되는 고바야시 교장선생님의 교육이념을 배워야 하는데에 그 초점이 맞춰진다. 막연히 ‘고바야시와 같은 선생님이 되겠어요’ 라고 끝을 맺기에는 많은 것들이 아쉽다. 교사이기 이전엔, 한 인간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열린 사람, 트인 사람,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단지, 나와 조금 다른 것뿐임을 인정하고 알량한 정의감에 잘난 체하며 떠들어대기보단 작게나마 가슴으로 그들을 바라봐 주어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