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나 버린 큐브.

여섯면 중 유일하게 완벽한 색들의 조화를 이룬 단 한면만의 기억을 가슴 깊은 곳 묻어둔 가녀린 여인 아오이.

흰색의 블라우스만큼이나 청초하고, 정결한..

십여년의 기억을 조금씩 지워나가려는 듯한 잦은 목욕.

자신의 기억이나 사고는 봉인하려는 듯한 고십스런 독서.

그녀를 떠 올리게 하는 수식어이다.

 

사랑이라 느끼고, 그 시랑을 표현하고 싶지만 끝내 그 마음을 열어 내비춰주진 않는다. 왜일까?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친절과 애정을 베푸는 마빈이라면,

단지 사랑하는 이유만으로 회피하고, 폐쇄적 냉정을 발산하는 아오이다.

 

사람이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 밖에 없는 것이란다.

-210

 

단 한통의 편지에 송두리째 뽑혀져 나온 가느가란 뿌리.

얽히고, 섥혀 그 자자란 줄기조차 툭툭 끊겨져 버리듯 온 몸 구석구석 위태롭게 조각난다.

준세이.

나이스 가이에게 안부를 전해달란 그의 짧막한 문장에도 숨이 컥컥 막힌다. 고집스럽다 여전히..

열정이라 일컫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동틀녁 일출의 혓바닥같은 시뻘건 광채같은 사랑.

 

두오모를 바라만 보는것 만으로도 아찔하다.

그 건물의 위엄앞에 소름돋도록 잔인하기까지 한 그녀의 사랑.

그의 사랑.

 

 

 

얼마 전 티비에서 방영된 영화를 조금의 미동도 없이 떡하니 자릴 잡고 앉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이름만 유명한, 또는 음악만 유명한, 주연배우들만 유명한

그저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잠 못들게 하는 또하나의 작품을 만났다. 실로 반가웠다.

한껏 부풀어 오른 가슴이 뻥하고 터져버리는 듯한 느낌.

난 고마웠다. 난 슬펐다. 난 행복했다.

 

책을 먼저 보았다면 참.. 좋았을텐데..

아니,

영화를 먼저 보아 다행인점은 장면 장면에서 오차없이 떠오르는 OST의 멜로디였다.

 

다시금 그 멜로디를 들으며 준세이와 아오이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다. 십년의 사랑, 백년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