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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통찰인 연구 보고서 같은 <그릿>을 읽는 동안 여러 번 감정이 교차했다. 우선 부정적인 생각이었다. 한글로는 정의하기 어렵다는 의미를 지닌 '그릿'이 요즘처럼 모든 것이 팍팍한 현실에선 그다지 위로가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이었다. 사실 죽음만큼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어쩌면 “내가 그릿(끈기)가 없어서 안 되나?”라는 좌절모드를 제공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노력도 아닌 노오오력을 하라고 끊임없이 채찍질해야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가 지상 최대의 목표처럼 신봉하는 성공이라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그릿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요인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여기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어쩌면 아무리 노오오오오오력 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는 단념도 필요할지 모른다.(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주듯 저자는 중반 이후에 하다 적절한 목표 수행이 있다면 단념하는 것도 괜찮다고 밝히고 있다.) 책장의 마지막을 덮은 지금 이 책을 요약해 본다면 "관심, 연습, 목적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결국 이 책은 긍정적인 책으로 바뀌었다.

"그릿은 내일은 나아질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나은 내일을 만들겠다는 '결심'이다." 227, 다시 일어서는 자세, 희망을 품어라

사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각종 프로그램에서 갖가지 재능을 뽐내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게 광풍에 가깝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대한민국은 무슨 광물을 채굴하는 것처럼 영재를 발굴하려 애쓴다. '세상엔 영재와 영재가 아닌 사람으로 구분하기'에 열중하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보기 불편할 정도다.

"재능에만 집착하는 자세가 해로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간단하다. 재능만 집중 조명함으로써 나머지 모두를 가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57, 우리는 왜 재능에 현혹되는가?

저자가 천재 혹은 영재 같은 특별한 '재능'에 일방적인 애정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재능을 소유했다는 자만自慢에 빠져 가진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지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보통의 범재가 노력한다고 천재나 영재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낼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들은 노력하지 않고 그들과 같은 재능이 없는 이들은 끊임없이 그릿을 발휘해야만 그나마 비슷한 결과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물론 그런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으니 노력도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하면 하지 않은 것보다 분명 다양한 변화가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재능보다 그릿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몰입을 방해할 지경이었다.

"노력하지 않을 때 당신의 재능은 발휘되지 않은 잠재력일 뿐이다." 82, 재능보다 두 배 더 중요한 노력

고교시절 쉬는 시간조차 멈추지 않고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친구가 있었다. 반면 쉬는 시간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에도 집중하지 않던 친구가 있었다. 이 둘은 사촌지간이었고 둘의 재능은 차이가 많았다. 수업시간조차 집중하지 않던 친구는 쇼팽의 음악을 연주할 정도로 피아노도 잘 치지만 다른 친구는 피리조차 불기 어려워했다. 재능은 없던 친구는 3년 내내 쉴 새 없이 공부에 매진했지만 입시에 떨어졌고 수업시간조차 집중하지 않던 친구는 명문대에 입학했다. 재능은 중요하다. 분명. 그릿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재능을 가진 이들과 보통의 사람들의 그릿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모든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없지만 아무 일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당신의 흥미와 상상력을 사로잡는 일과 직업을 일치시키려는 것은 바람직한 생각이다. 물론 행복과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분명히 높아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젊은이에게 열정을 좇으라는 격려의 말도 필요 없다. 만약 열정을 느낀 일이 있다면 당장 그 열정을 좇을 테니 말이다." 140, 관심사를 분명히 하라

저자는 열정이 "단순히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이어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미라고 하고 있다.

내 인생을 들춰보면 나는 부모님을 비롯한 5살 어린 막냇동생에게까지 "끈기가 없다"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고 자랐다. 학창시절 그러니까 장애인이 되기 이전은 거의 운동에 빠져 있었다. 축구, 야구, 유도 등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땀을 흘릴 수 있는 스포츠는 다 좋아했고 몰두했다. 쉽게 싫증을 냈다기 보다 쉽게 다른 것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이것저것 하다만 것들이 많았다. 이런 점들이 나를 "끈기 없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장애인이 된 후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호기심에 진로를 결정했고 졸업과 동시에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해 8년 내내 줄곧 가슴 두근거리며 열정을 쏟았다. 그리고 창업한 스튜디오가 실패하면서 디자인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는 하루에 5시간을 자기도 힘들 만큼 고된 일이었지만 이 일을 하는 7년 내내 즐겁고 보람찼다. 하지만 죽을 만큼 힘에 부쳐 결국 다른 일을 찾았다. 지금은 5년째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데 이 일 역시 날마다 새롭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은 "과연 나는 끈기가 없는 사람일까"하는 것이다. 과연 나에게 그릿이 있을까?

이 책은 군대를 비롯 스포츠, 경제, 교육 분야 등 다양한 직군의 사례를 포함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특히나 223쪽의 낙관론자와 비관론자가 역경에 대처하는 차이에 대한 설명은 알고 있었음에도 또 다른 깨달음을 전해준다. 제임스 폰솔트 감독의 <더 서클The Cicle>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면접을 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무표정한 면접관은 "살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하는 장면에서 잠시 숨이 멎었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잠재력을 잃는 것입니다."

이 책은 "과연 우리가 가진 잠재력이 어떻게 발휘되는가"에 대한 명쾌한 깨달음을 준다. "'영재' 까짓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자신감과 함께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인 사람이라면 다소 이 책이 두껍고 건조한 문체로 술술 읽히지 않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완독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을 뒤로 갈수록 더 많은 깨달음을 제공하고 있다.

그릿, 앤절라더크워스, 김미정, 비즈니스북스,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