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에게 어머니는 영원한 식민지이다. 여성학자인 친구가 했던 뼈있는 농담이다. 딸을 교육시켜 세상에 내보내면. 특히 결혼이라도 시키면, 일하는 딸의 애들 거두어주고 궂은 일 뒷감당해주랴, 나이 들수록 엄마 일이 더 많아지는 이 땅의 여성은 살아있는 한 발 뻗고 편히 쉴 날이 언제 있겠는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공부하고 일을 가진 딸 세대가 할머니가 되면 좀 달라질까. 심심산골에서 외손자를 돌보는 꼬부랑 할머니가 나오는 <집으로...>를 보노라니 불현듯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살아있는 여성 캐릭터 춘희를 재현해냈던 이정향 감독이 이번에는 <집으로...>에서 우리의 마음을 저미는 외할머니를 들이민다. 퍼주기만 하고 한번도 제대로 인정도 대접도 못 받았던 바로 그런 우리들의 외할머니가 이정향의 따뜻한 화면 속에서 피어난다.

서울 꼬마와 시골 할머니가 만들어 낸 풍경화

영화의 첫 장면은 이혼한 엄마가 어린 상우를 데리고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기차 안이다. 그림자 진 표정에 지친 엄마는 상우에게 할머니를 설명하고, 상우는 컴퓨터게임을 하며 시큰둥하다. 떠들썩한 장터 같은 털털이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심심산골, 괜한 수사법이 아니라 정말 '심심산골 그 자체'이다. 아직 저런 곳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자연 속에서 약간의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며 사는 산골 마을에서도 더 깊이 들어가 꼬부랑 할머니가 혼자 사는 오막살이 굴핏집(참나무 껍데기로 지붕을 이은 집). 장작불에 가마솥, 요강과 가마니로 가린 화장실,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지게로 퍼 나른 물, 전파도 안 잡히는 TV. 전화는 물론이고 냉장고 등등 웬만한 시골에도 있을 법한 가전제품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홀로 살던 할머니가 불현듯 외손주를 두 달간 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