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시에는 해무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흰짐승이 바다로부터 솟아올라 축축하고 미세한 털로 뒤덮인 발을 성큼성큼 내딛듯 안개는 그렇게 육지로 진군해왔다.
페이지 :  ’도가니’ 중에서 (p7)

	선생님, 그 사람들 말합디다. 이왕 엎어진 물, 이 기회에 애 아버지 서울 병원에나 한번 보내보고 유리 대학공부까지 시키는 것도 좋지 않겠느내고. 선생님들, 그 자리에서 분명히 안된다고 했는데도 그 사람들 다녀간 뒤로 그 소리가.....자꾸 들리더라 이 말입니다. 네? 선생님들, 우리 아들하고 손주는 못 듣는 그 소리가!  이 귀에 말입니다. 자꾸 들리더라고요, 네?"
페이지 :  ’도가니’중에서 (p235)

	....누군가 그러더라. 엄마였던가, 선생님였던가, 아님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다른 목사님이셨던가...아니면 그 사람들이 모두 그랬던가, 열심히 공부하라고 그래서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라고.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믿었지. 그런데 얼마전, 자애학원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깨달게 된 거야. 어른이 되면 그 대답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면 그 질문을 잊고 사는 것이라고 말이야.
페이지 :  ’도가니’ 중에서 (p227)

바랬다.
책 속이라면 모든 것을 이루어 질 수 있기에
그들 모두도 행복해 지기를 
바라고 바랬다.
...
하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우리의 자화상이었기에 남은 것은 가슴 속 먹먹함뿐이었다.

무진시의 안개를 덮은 것은 진실이요, 우리의 귄력과 돈이라는 이름 아래 남은 욕심과 이기심 그리고 그것뿐인 현실이다.
이것들에게 맞서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들, 그것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었다. 그들은 청각장애를 가졌다. 그렇기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어떠한 달콤한 아첨도 아부도, 거짓말도 그들을 듣지 못한다. 오직 보는 것만이 가능하기에 눈조차 감지도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그저 본 것, 그리고 느낀 것, 그대로만 알 뿐이다. 그렇기에 그것이 곧 진실이다.
우리는 그들보다 한가지 능력을 더 가지고 있다.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들보다 한가지 능력을 더 가지고 있기에 어쩌면 진실을 알아내는데 더 유리하다.
하지만 인간은 가진 것이 많을 수록 진실을 보기보다 그저 가리는데 급급할 뿐이다.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점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가끔 생뚱맞고 대게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p165)


진실이 비논리적인 이유는 그 반대라면 믿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고, 
진실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올바르게 살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혹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우리는 수많은 거짓을 보았고 외면했고 그 속에서 살고 있으며 지금도 거짓말을 한다. 정의라는 이름아래 하얀거짓말이라는 변명아래. 그렇기에 우리는 진실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진실을 맞이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낯선 손님을 맞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가 진실을 마주하고 있다. 애써 외면하고 잊혀지기를 바라고 아니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진실의 일부를 구지 찾아내고 마주보고 듣고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 그저 좋던싫던 진실을 꾸역꾸역 삼겨야만 한다. 진실앞에 얼굴이 새하애 질 정도로 변명을 해야한다. 우리는 그저 수백만의 강인호일뿐이다. 안락한 가정, 평온한 직장, 안정적인 미래를 꿈꿀 뿐이다. 아무런 힘도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고 가장이고 시민일 뿐이다.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변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