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세계테마기행 시리즈 책 중에서 말리와 요르단에 이어 세번째로 만난 책이다.  말리보다는 요르단이 요르단 보다는 칠레가 읽는 맛이 더 있는듯하다.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서 전해주는 느낌의 차이가 많이 다른가보다. 말리는 배우 최종원님이 요르단은 사진작가 유별남님이 여행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쫘르르 펼쳐본 칠레는  앞 선 두 책보다 글이 더 많기에 소설가 성석제님이라서 그런가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시작이 조금 이상하다?’란 생각에 보았더니 작가가 한동엽이란 분이었다. 소설가가 다녀왔는데 글을 왜 다른 분이 적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다시 첫페이지부터 꼼꼼하게 읽어갔다. 나같이 EBS 세계테마기행에 매료되어 있는 분들이 많은가보다. 매료 정도가 아니라 용기까지 낼 정도로 적극적인 분이 있었나보다. 이 글을 적은 저자가 그러했다. 테마기행의 루트를 따라서 일상을 떨쳐버리고 칠레를 향해 과감히 떠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분이 적었다. 그래서 그런지 꼭 내 맘같은 책이었다. 뭔가 알려줘야한다는 느낌보다 정말 간절히 떠나 충만히 즐기는 것이 글 한자 한자에서 살아 움직이는 기분. 부럽다. 그 용기가...

아이들에게 칠레를 쉽게 기억하기 위해서 "제일 긴 나라"라고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 펼쳐본 책의 지도 또한 앞선 나라들과는 다른 지형. 참 날씬하고 길기도 길다. 얇은 구름이 낮게 깔린 것처럼 뿌연 산띠아고, 구름이 아닌 스모그라는데 산띠아고 사람들은 그 스모그를 "민주적인 스모그"라고 부른단다. 스모그가 민주적이라고? 뭘까? 궁금증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스모그가 아침에는 도시 중심가에 낮게 깔리다가도 저녁이 되면 부자들이 사는 산기슭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란다. 서민의 공간과 부유층의 공간을 매일 아주 공평하게 오르락 내리락 한다고해서 그렇게 부른다는 설명에 이유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 명칭에 서민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일까?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진통없이 세워진 나라는 없구나 싶다. 칠레 역시 모진 역사의 세파를 헤쳐나왔나보다.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악마 "삐노체트" 익숙하지 않은 두 이름이 나왔다. 하지만 칠레의 역사상 선과 악을 대표하는 중요한 두 명의 인물이었다.

"지금은 저들이 우리를 짓밟을 수 있겠지만 미래는 민중의 것, 노동자들의 것이 될 것입니다. 역사는 우리 편이며 그것은 민중이 만드는 것입니다. ...... 수천 그리고 또 수천 칠레인의 고매한 의식에 뿌린  씨앗은 결코 헛되지는 않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무력을 소유한 저들이 우리를 굴복시킬 수도 있겠지만 범죄 행위로도 무력으로도 사회적 진보만은 멈출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 민중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아옌데 대통령의 마지막 유언이 된 연설이 내 마음에도 잠시 머물렀다. 연설 후 삐노체트 군부와 맞섰다고 한다. 아옌데와 함께 칠레의 민주주의도 죽었다고 하나보다. 칠레인들은...칠레의 가슴 아픈 역사도 슬쩍 들여다 보았다. 

대통령궁인 빨라시오데라모네다(’돈의 궁전’이란 뜻)는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공간인가보았다. 전시용이 아닌 실제로 대통령과 장관들이 집무를 보는 곳. 그런 곳이 시민들의 문화적 공간이자 공원이라했다. 그런 곳이 있을 수도 있었구나 싶다. 간혹 국가에서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연구원 근처를 지나다보면 늘 드는 생각,’저렇게 잘 가꾸어 놓은 정원이 일반인들에게 개방이 되면 참 좋을텐데...’ 연구원이라 조용해야하고 보안을 위해 그러해야하는건지 모르겠지만 개방적인 대통령궁을 보며 조금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가는 칠레의 와인창고 역시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오늘 마트에서 9900원의 착한 가격의 와인들 중 칠레산과 프랑스산을 들고 고민하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프랑스산에 손이 가서 걸로 사왔다. 글을 적다보니 ’칠레산으로 사올걸’하는 마음이 든다. 이 글 다 적고 한 잔 하고 잠들면 칠레여행 하는 느낌이 더 날것 같아서 일까?

여행가는 아리까를 거쳐 깔라마의 추끼까마타 광산으로 갔다. 체 게바라의 흔적을 찾고 싶어서였나보다. 또 한 명의 이름이 나왔다. <체 게바라 평전>이란 책을 위시리스트에 담아 두기만하고 아직도 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체 게바라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쿠바와 관련 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왜 칠레에서 그 사람의 흔적을 찾나싶었다. 깔라마의 제련소 광산 노동자라면 누구나 체 게바라의 초상화를 가지고 있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이 추억하는 체 게바라의 흔적을 확인하고 싶어서라했다. ’궁금한게 참 넓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무작정 돌아다니며 뭔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어서 내게 주는 배움이 더 있지 않을까 싶다. 광산의 흔적은 다른 나라를 가도 참 허무한 풍경이다 싶다.

산뻬드로데아따까마, 도시 이름들이 참 어렵다. 여행가는 EBS세계테마기행에서 이 곳을 보는 순간 ’생명’과 ’죽음’이라는 극의 단어가 동시에 떠올랐다고 했다. 난 정말 아무 생각없이 TV를 통한 여행에만, 풍광에만, 낯선 곳의 모습에만 열광한 것은 아닌가 싶다. 난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미스깐띠 호수, 시릴만큼 지독하게 푸르러서 하늘이 호수이고, 호수가 하늘같다라 했다. 참 답답하다. 어떤 느낌일까? 실제로 그런 광경을 앞에 두면...

아따까마 사막이 ’죽음의 계곡’이란 뜻인가? 아님 아따까마 사막의 일부를 죽음의 계곡이라 부르는 것일까? 생명의 흔적이라곤 여행자밖에 없다고 했다. 여행가도 ’죽음’보다 이 사막에 잘 어울리는 단어가 없어보인다했다. 그리고 만난 곳이 달의 계곡이라 했는데 거긴 죽음의 계곡보다 더 메말라 있었단다. 자꾸 메마르다 메마르다하니 정말 모래마저 바스러지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든다. 

또 한명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파블로 네루다" 또 이 사람은 누구인지..시인이자 외교관이었다고 한다. 1971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이구나.  칠레에서 우리나라의 한용운이나 김소월같은 사람인가보다. 더 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자연의 시간에 맞춰 즐길 수 밖에" 뜻하는 바대로 만나지 못한 풍경을 보며 여행가가 한 말이다. 언제나 시간 맞춰 떠나려하고 또 그렇게 떠나려면 북적거림이 싫고 그래서 그 핑계로 떠나지 못하게 되고 그게 나이다. 그래, 여행가의 말대로 주어진 자연의 시간에 맞춰 그 때 그 때 즐기면 되는 것을....너무 욕심만 부렸나보다.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통틀어 유일하게 스페인 정복자를 물리친 민족 마뿌체족을 찾아 떠난 그가 느낀건 폐허가 된 승리였나보다. 변화하는 세상의 수레바퀴에 제대로 맞물려 돌지 못한 이유일까?칠레의 이방인이 되어, 마뿌체족이기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이 사회와 융합할 수 없는 그들의 슬픈 운명을 느꼈다고 한다. 세계의 열강에 삶 터를 빼앗긴 원주민들의 삶이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싶다.

칠레 남쪽의 끝, 빠따고니아까지 갔다. 펭귄의 세상인 막달레나 섬에 가고자 했지만 이루지 못했나보다. 내가 왜 이렇게 아쉬운 걸까? 목적한 곳에 닿지 못한 그 아쉬움을 다른데로 돌린다고해도 마음 끝자락을 잡을 허전함이 있을거라는 것을 알아서 일까?

또레스델빠이네 국립공원에서 여행가가 느낀 단어는 ’고통’이었나보다. 좋은 여행 같아 보이는데 여행가가 떠올리는 단어는 그리 밝지 못한듯하다. 우리나라에서만 버스에서 노래방을 하나했는데 칠레에서도 그러한가보다. 그게 왜 이렇게 신기하게 느껴지는걸까? 옥색으로 빛나는 빼오에 호수를 사진으로 봐도 그 빛깔이 느껴지는데 직접 보면 어떠할까? 아!....휴...........

아레나스전망대 근처인지 전망대에서 내려와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지명의 어려움 때문에 그런 것인지 종종 책에서 길을 잃는 나를 발견한다. 세계 주요 도시까지의 거리가 적힌 이정표가 있다했다. 옆에 사진이 있는데 내게도 인상적이다. 마치 저기가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이정표가 말하는 것 같나보다. 난 중심이라 표현했는데...

여행가는 여행을 마치면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라고 했던 체 게바라의 심정이 되어보았나보다. 이유야 뭐든 저 말은 좋네. 나도 매일 매일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라고 느끼며 살고 싶다. 또 한 권의 책을 읽고 가슴을 열었으니 나 역시도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넉넉한 사진과 함께 여행가의 마음이 담뿍 느껴지는 즐거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