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출간 소식을 온라인서점에서 만나자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몇 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었는데 경주에 가서 확인을 해보고 싶다며 책을 들고와서 경주에 가자고 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 때만해도 문화유산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면서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내게도 자라게 되었고, 그래서 이 책이 이런저런 기억과 더불어 눈에 띄였나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발간되는 책들의 묘미가 '추억에도 있구나' 싱긋 웃으며 우선 친구에게 한 권을 선물하고 나도 읽게되었다.

 

책을 처음 펼친 곳은 한의원에서 침 맞으려 기다릴 때였는데 젊은 한의사선생님이 보시더니 "두꺼운 책을 잡으셨네요."라 인사하셨다. 이틀 후 다시 갔을 땐 "벌써 많이 읽으셨네요? 그 책 읽으면 그 곳에 다녀온 것 같이 느껴지나요?" 하고 물으시기에 "아뇨, 가서 확인하고 싶어져요."라 답했다. '아하, 그래서 친구가 책 들고 가자했었구나...' 그제서야 그 맘을 알 것 같았다. "제가 그래서 그런 책을 못잡는다니까요..."하시는 한의사선생님의 답이 참 귀여워 또 한 번 웃었다.

 

솔직히 책을 잡을 땐 지루할거라 각오를 하고 펼쳤다. 그런데 에세이처럼 편안했다. 알려주고 싶은 것은 있으나 억지로 주입하려하지 않는 절제의 노력이 느껴졌다.

 

경복궁 이야기는 아이들과 서울에 있는 궁궐들을 방문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내게 많은 이야기꺼리를 알려주었다. 경복궁에도 몇 번 가본적이 있긴하지만 그냥 쓰윽~ 둘러보고 오거나, '아하, 저기가 드라마에 나오는 곳이구나.' 이외엔 큰 감흥도 생각도 없었던 것을 많이 부끄럽게했다. 역시 알아야 재미도 있는 법이다. 궁이 자연과 어울리는 미학을 가졌는지, 근정전의 박석, 월대 모서리의 석견, 영제교의 천록상, 양의문의 굴뚝, 자경전의 꽃담장, 경회루 등 이젠 가서 확인하고 보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사진에 경복궁이 한 눈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며 근처 높은 빌딩에서 전체를 사진처럼 조망해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았다. 그럼 궁이 자연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확인해볼 수 있을거니까. 그런 곳이 있는데 나만 모르는건가?

 

경복궁의 경회루를 지은 건축가인 박자청은 노비 출신으로 종1품까지 올랐다고 한다. 장영실에 앞서 노비 신분을 뛰어 넘은 이가 있다는 것 또한 처음 알게되었다. "목조건축은 사람이 사용할 때만 그 생명을 유지한다."(p98)고 하며 좀 더 사람들 속에 있는 궁이 되길 바라는듯했다. 하지만 사용 계획시엔 외국의 궁들과는 달리 목조건축물이며 경회루가 아닌 곳은 연회를 위해 지어진 곳이 아니라는 것이 배려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옥에서 난 누마루가 가장 탐이 난다. 건청궁 장안당의 누마루 사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순천 선암사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며, '지난해에 다녀온 순천의 사찰이 어디었더라? 거기가 거긴가?' 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갔던 곳은 아닌지 설명에서 내 기억과 맞는 부분이 없었다. 찾아보니 내가 다녀온 곳은 송광사. 순천엔 역사적인 사찰이 꽤 있나보다란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내가 이 책을 읽고 간다해도 저자가 본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그 내공의 힘을 따라갈 순 당연없겠지만, 그걸 넘 쫓으려는 것도 옳지 않은 것은 아닐까? 석등없는 사찰 이야기를 읽을 때 주지스님의 지혜에 다시 한 번 미소지으며 넘겼다.

 

달성 도동서원의 글에선 시각장애인과의 답사를 약속하고 이행하지 못한 마음의 짐이 느껴졌다. 어쩜 글로 그걸 덜어버리려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관광지 중에서 제일 비켜가는 곳 중에 한 곳이 서원이었다. '그냥 집은 한옥이요 서원이 뭐 거기서 거기지.' 역시 알아야 볼 것이 있고 느낄 것이 많아지는 것인가보다.

 

단일민족이라는 뿌리깊은 생각에 외래 귀화인의 성씨들이 그렇게나 많은 줄 몰랐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많은 침략 속에 충분히 있음직한 일인데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번 여름이 거창의 수승대에서 연극제를 한다고해서 처음 들어본 이름 수승대를 이 책에서 만나게 되니 마치 아는 곳의 숨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듯한 즐거움 또한 있었다.

 

부여 이야기를 통해 백제에 대한 우리의 시각에 대한 것도 다시 생각해보았다. 책 읽기 전 여름 휴가 때 전주국립박물관에 다녀왔다. 그 동안 부산, 김해, 경주 등의 경상도에 있는 박물관이나 서울경기지역 여러 박물관들은 가보았지만 백제의 역사가 있을법한 전라도와 충청도의 박물관은 처음이라 은근 기대를 하였다. 하지만 백제에 대한 것은 많지 않았고 오히려 그 곳에서 가야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서 아쉬움을 가졌기에 부여이야기에 나온 백제에 대한 고민들이 이해가 되었다.

 

전국 돌담길 사진 8컷을 보는데 왜 이렇게 맘이 뛰는 것인지,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관아에 대한 슬픈 이야기도 잘 읽었다. 최치원의 화려한 문장을 아이들에게 읽어줄 수 있어 좋았다. 아이들의 시조가 되시는 분이니까. 이렇게 조금씩 접해보고 알아가는 것도 괜찮겠지.

 

마지막에 답사 일정표와 안내로 센스까지 더해 놓은 책. 책 한 권으로 뭘 얼마나 알고 또 책을 들고 간다한들 얼마나 새로움을 얻을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아야겠다'는 의지와 '알고싶다.'는 궁금증은 접수했다. 역사여행의 길잡이로 명성만큼 좋은 책이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