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마지막 장면에 불만을 가졌던 나는 그 후 김진명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다. 아마 이 책 또한 작가의 이름을 먼저 봤다면 무척 주저주저 했을듯하다. 하지만 리뷰를 보고 혹해서 덜컥 산 후에야 김진명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리뷰를 본 기대를 좀 낮추어 책을 펼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 기분 좋은 소설이었다. 생뚱맞다고 느끼는 이가 있을까? 차차 이야기 하기로하고...작가의 말부터 읽어나갔다. "이 엄청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확고한 자료를 근거로 이 책을 써냈다." 이 한 줄의 글이 작가에 대한 나의 선입견도 떨쳐버리고 이 소설에 대한 기대감도 쭈우욱 끌어올렸다.

책은 여교수의 의문의 죽음에서 시작되어진다. 이 책에서도 반물질로 추정되는 연구를 하는 이가 나온다. 정말 그런 연구를 어디에선가 하고 있나보다. 정말 여러작품에서 만나고 있다보니 진짜같은 생각이 든다. 대단한 이력을 가진 이정서. 죽은 여교수의 친구다. 친구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정서가 원인을 찾기 위해 나섰다. 또 한명의 친구인 한은원이란 역사학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추적해내고 친구 은원이 또한 위험에 빠졌다는 생각에 친구를 찾아 중국으로 나선다. 거 참, 죽은 여교수 미진과 정서의 사이가 죽음을 조사할 정도로 특별한 사이였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없었다. 더더구나 문상을 왔을 때 정서는 무척 바빠보였는데 죽음의 원인을 캐기위해 그렇게 다닐 시간이 있었을까? 친구 은원이를 구하기 위해 그렇게 다닐만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발전하지 않은 삼각관계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절박함은 느껴지지 않았는데...어째거나 정서는 은원이를 찾아떠나 은원을 구하고 미진의 죽음도 자살이 아님을 밝혀낸다.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권을 단숨에 읽어버릴 정도로 빠르고 흥미롭게 구성되었다. 중간에 갑자기 왜 이 사람이 튀어나올까 싶은 인물들이 있긴했지만 뒤로 읽어가면 나름 짐작할만한 이유가 제시되니 구성에 대한 허술함도 덜했다. 그냥 여기 이야기 한 것까지는 그냥 재미있는 책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찾은 것은 민족의 자긍심에 중요한 아주 중요한 자료였고 주장이었다.

이 주장과 자료 때문에 이 책이 재미있었고 흥미로왔고 앞서 말한 것처럼 기분 좋은 소설이되었다. 한은원...역사학자인 그녀는 자신의 한씨 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잃어버린 우리 역사 고조선 이전 3천년을 찾게 된 것이다. 나 역시 청주 한가이다. 어떤 한자를 쓰냐는 질문을 받으면 답하기가 싫어진다. ’한나라 한’ 대한민국의 한자랑 같기 때문에 누구나 알고 있는 글자려니하고 어떨 땐 슬그머니 ’나라 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중국 한나라를 생각하는 ’한’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한씨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을 해 본 것이었을까?  한씨가 고대왕국의 왕족이라는 것을 어디서 들은적이 있었다. 그래도 잘 모르는 역사이기에 그러려니 하고선 아이들이 물으면 ’조선시대 왕비가 제일 많이 나온 성이 청주 한씨와 파평 윤씨란다.’ 정도만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한씨 성에 대한 궁금증을 따라 찾아낸 우리 역사에서 중국 한나라의 한이 아니라는 것, 너무 기분이 좋았다. 어쩜 이 땅의 시초가 될 수도 있는...기쁘고 자긍심이 마구마구 생겨갔다.

김해국립박물관, 부산 복천동박물관, 경주국립박물관을 둘러보며 마한, 진한, 변한과 가야국의 설명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그래도 좀 익숙한데 이름만 아는 저 나라들. 저 나라들에 대한 설명이 세 박물관에서 본 내용들이 잘 연결이 안된다고나 할까. 무지의 이유도 있겠지만 뭐라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역사 이야기에 흥미가 더해졌다. 기자조선, 고조선 그에 대한 내용도 궁금해 한 때 책 한 권을 잡아보았지만 내 머리에선 잘 정리가 되지 않았었다. 내 수준에 맞지 않는 너무 어려운 책을 선택했었나보다. 이 책이 소설이라 더 부담없었다. 진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작가가 충분한 자료과 근거를 바탕으로 썼다고하니 사학계에서 이미 연구하고 있는 분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또 책 내용처럼 그냥 주어진 역사만 끌어 안고 있어서 경종을 울려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에 은원과 정서가 극적으로 구출되는 장면은 조금은 억지다 싶긴하지만 굳이 탓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 공안을 이기고 유유히 빠져나오는 통쾌함이 있었다고 하면 얄미울까? 백마탄 왕자의 스케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 평범한 남자들 읽고 넘 고민 안해도 될 것 같다. 그들 곁엔 평범한 여자들이 있을거니까. 평범한 고민만 함께 나누면 되지 않을까?

우리의 자랑스런 과거의 역사,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 한은원과 미래를 바라보며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꿈의 미래에너지를 개발하는 정서. 과거와 미래의 찬란한 우리 역사를 작가는 꿈꾸고 찾고 이루고 싶은 것이 아닐까싶다.  힘든 시기에 독자들에게 "화이팅!"을 외쳐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인한 아쉬움을 시원하게 깨쳐줘서 좋았다.

우리가 사실이라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을 때론 한 번쯤 의심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마무리는 글 말미에 있는 은원의 말로 대신할까한다. "나라의 힘이 반드시 경제에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세웁니다. 우리의 조상을 찾는 일이야말로 자손을 위하는 가장 분명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