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떠오르던 방송이 있었다. 어릴적 이불속에 들어가 눈만 빼꼼내놓고 보던 '전설의 고향'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워보일지도 모르는 특수분장과 효과들이지만 그 시절에는 눈을 질끈 감기에 충분했다. 전설의 고향은 각지의 전해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재구성하여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특히 끝날 무렵 '이 이야기는 충청북도 청원군 인차리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 성우의 마지막 멘트가 없으면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들 정도로 좋았다.

 

이책은 전설에 우리 한국사가 묻혀진 '역사의 고향'이라고 할만한 책이다. 저자 이은식 박사는 전국을 돌며 잊혀져 가거나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찾아 그 노력의 결실로 이렇게 책을 냈다. 

내가 읽은 것은 지명이 품은 한국사의 다섯번째 충청북도편이다. 충청북도 향토사가 고스란히 책안에 담겨져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몇가지 유래들을 발췌해보았다.

우리가 아는 자린고비는 지독히 인색한 구두쇠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일화들이 많지만, 특히 음성군의 조륵은 대표적인 자린고비였다. 어릴 적 책에서 많이 읽었던 부분처럼 굴비를 매달아놓고 밥을 먹었는데, 그 마저도 식구들이 두번 쳐다볼라치면 큰 호통을 쳤다고 한다. 너무 짜서 물과 밥을 많이 먹는다 이유였다.

또한 장날이면 시장의 어물전을 찾아 이것저것 주무르면서 값을 흥정만 하고 생선냄새가 손에 밸쯤이면 값이 비싸다며 그대로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는데 돌아와서 그 손을 장에 넣고 생선맛을 볼 정도 였다고 한다. 

이처럼 지독한 그가 일평생을 자린고비짓만 한것은 아니였다고 한다. 실제 영조재위기에 한낱 이름없는 농부 조륵은 자린고비가 아닌 '자인고비(慈仁考碑) 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세상에 드문 자선가이기도 했다. 그런 조륵을 가상히 여긴 영조는 정3품의 통정대부 보다 높은 품계를 조륵에게 하사했다.  단지 모으는 것에만 집착하는 자린고비가 아닌 그는 자신만의 근검절약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충주시 신니면 대화리 화치마을에 조륵의 묘가 있고 음성군 생극면에는 그가 살던 집터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린고비 무조건 아끼고 인색한 것만이 아닌 자신만의 부자철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그것으로 영조에게 품계를 하사받았다는 사실에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 소개할 부분은 격변의 시기 국제관계에 희생양이 된 김옥균이 피신했던 명월암이다.

조선 말기의 정치가 김옥균은 수구적인 정치에 반발하여 개혁을 단행하고자 이른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삼일천하로 물거품이 되고 만다. 서구열강과 일본이 조선의 상권을 잡고 내정간섭을 하자. 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동향을 파악하고 개화사상을 더욱 확고히 굳힌 김옥균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신분제도를 폐지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할 것과 선진과학기술을 도입하여 근대화를 해야 자주국이 될 수 있다고 부르짖었다. 그의 혁명은 일본의 부추김으로 시작하였으나 청나라의 발빠른 대처로 실패하고 말았다. 동지들과 뿔뿔히 흩어진 김옥균이 피신한 곳은 옥천군 군북면 석호리의 장길마을이였다. 그는 이곳에서 기생 명월이 지냈으나 눈치빠른 명월이 자신때문에 쉽사리 석호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김옥균을 보며 기나긴 편지를 남기고 금강 절벽아래로 몸을 던졌다. 뒤늦게 명월의 애절한 편지를 발견한 김옥균이 바위에 명월암이라고 직접 새겼다고 한다. 이후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하나 박해를 받다 결국 일본여관 동화양행에서 살해되고 말았다. 일제는 이후에도 김옥균의 죽음을 교묘히 이용하며 생전에 했던 대우와 달리 죽음을 애도하고 대동아공영권의 희생물로 우상화시켰다. 아쉽고 미비한 부분들로 인해 일제의 침략의 빌미로 이용되며 오히려 매국노가 되어버린 김옥균. 그의 행적을 이렇게 잠시 머물다간 충청도의 명월암을 통해 다시 재조명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 지방에서만 유래되어 오던 향토사에서 부터 구한말 우리나라의 역사가 한권의 책에 같이 살아 숨쉬는 책이다.  책을 읽으며 향토사가 바로 우리 역사의 뿌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방에 국한되거나 지역적인 특색이라고만 생각되던 이야기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대한민국의 오천년 역사를 이루고 있다는 걸 알수 있었다. 

충청북도의 유래를 각 지역별로 쪼개어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역사뿐 아니라 여행시 미리 그 지역에 대한 향토사를 알아보고 가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를 느끼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