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랫만에 공지영 소설을 한 권 읽었다. 80년대말 ~ 90년대 초반의 사회주의권 붕괴의 혼란의 틈에서 대학과 군대에 몸 담고 있던 젊은 시절 <더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을 읽었었다. '방황'이라는 말은 그 혼란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했던 우리들에게 놓여진 상황을 함축하는 단어였던 기억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얼마 안 있어 읽은 책이 <인간에 대한 예의>였다. 너무 오래 되어 소설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도가니>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 때 그 소설에서도 작가는 팽팽한 긴장감을 갖고 현실을 응시하고 그 현실을 극복해 나가고자 했던 사람들의 치열한 혹은 진지한 삶은 묘사해 내려고 애썼던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더이상 ....>가 1990년에 출판 되었고, <도가니>가 2009년에 출판되었으니까, 청년기에서 시작해서 중년에 접어든 지금까지 나는 공지영의 참  오랜 독자인 셈이다.

회사 업무를 마무리할 무렵에 책을 펴들고는 책을 놓을 수가 없어서 12시경이 다 되어서야 사무실을 나섰고, 마지막 몇십쪽을 마저 읽어 버리기 위해서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소설은 지금의 체계 속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 유지, 지역의 경찰과 검찰, 법조계, 지역교육관청, 지역관청, 보수적 기독교 교회, 보수언론 등이 어떻게 유기적인 얽히고 섥혀서 이 불합리하기 그지 없는 현실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지를 자애학원 학생들에 대한 성폭력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온전하게 묘사해 낸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하는 에너지는 ,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작가의 독백은 어쩌면 우리를 암울하게도 만든다. 핵심범죄자들의 집행유예라는 어이 없는 법원의 판결는 바로 그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하다.

  하지면 그렇게 깨지고 패배하면서도 이제는 자애학원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스스로 깨우치고, 같이 협력하며 새로운 삶을 모색해 나가는 장애 학생들과 학부모, 지역시민단체들의 아름다운 결합을 통한  현재진행형의 새로운 도전 현장을 보여주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20대 초반의 어느 날 리영희선생의 '분단을 넘어서'라는 책을 선물하면서 지금의 내 나이쯤 되어 보일 것 같은 사람이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청년에게 책의 첫머리에 적어  뒀던 몇귀절을 친척집을 방문해서 우연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불합리 덩어리인 나라에 태어난 젊은이에게 그런 현실은 앞으로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얼마나 좋은 일이냐하고 긍정적으로 보고 진지하게 고민해 줄 것을 권하는 내용이었다. 그 때의 인상이 꽤나 깊었언 탓인지 지금도 그 기억만은 생생하다.

  이제 나는 소위 말하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 들었다. 민주화가 되었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돈 없고 빽없는 서민들의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팍팍하기는 마찬가지다.

  젊었던 시절의 그 책 첫머리에 씌여진 구절을 읽고 했던 마음의 작은 다짐을 중년이라는 지금을 물론 나이가 들고 그래서 언젠가는 다가올 죽는 그날까지 지켜 나가는 삶을 살야야 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 보게 된다.  내가 너무 철이 없고 순진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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