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어떻든 예술은 현대에 큰 자리매김을 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제 예술에 대한 독자적 가치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은 많이 적어지게 된 것이다. 과거보다 말이다.

  모방이란 말의 부정적 측면을 생각해 본다면 서양에 있어 예술은 위조품 생산을 위한 수단 정도로만 여겨졌나 보다. 하긴 지금도 정확한 모사품들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 작품을 보고 신기하게 보면서도 어떤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는 관객들은 늘어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술은 사람의 감각만을 자극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책 '예술척학" 플라톤에서 들뢰즈까지'는 그런 것들을 밝히려는 저자의 노력의 따른 산물이다.

  프랑스 인들이 쓴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처음 볼 때 꽤 고난도의 책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책을 읽는 동안 입증됐다. 그렇게 어려운 이유는 예술이 남긴 문제들이 그린 쉬운 것도 아니고 인간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크게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책의 시작은 예술을 가치평가한 플라톤에서 시작한다. 그러면서 시대를 흘러가면서 예술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찾거나 새로운 시도를 엿보면서 들뢰즈까지 왔을 때 그 창조성이나 개별성이 인정되는 순서로 이어진다. 과거의 모방이란 비난에서 새로운 특성을 인정받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예술의 험난한 길을 철학자들의 예술 판단과 평가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어떤 면에서 매우 각별하다.

  예술은 독자성과 수단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정신의 현현이라는 철학적 관념의 표현 수단으로 철학의 보조적 역할에 머물기도 했고 도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도 여겨졌다. 즐겁자고 만들었던 예술에 사회적 가치를 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갖게 된 것은 좋을 수도 있지만 나쁜 면도 많았다. 스스로의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언제나 권력자의 가신처럼 여겨졌을 뿐이다. 아마도 책 속에서의 이런 상황은 헤겔까지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니체에 의한 반전을 통해 예술의 매력은 다시금 조명받았다. 그리고 오늘의 많은 이들이 예술을 각별하게 볼 수 있도록 니체 이후의 많은 철학자들이 예술에 많은 멍석을 깔아줬다.

  이런 구도는 어쩌면 작가들의 기본 구성에 의해 만들어진 오해일 수 있다. 어차피 이 책의 저자 역시 나름 확고한 사상적 틀을 갖고 있을 것이며, 그 틀을 통해 이미 정해진 예술에 대한 시각 속에서 예술철학사를 구성했을테니 말이다. 즉 저자의 주관적 생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예술의 매력 부각은 지금을 사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기에 마냥 주관적이라 폄하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시회든 음악회든, 아니면 두꺼운 문학 책에 많은 시간을 사용하면서 그 매력을 느끼려는 많은 독자들의 수고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님을 밝혀주고 또한 그런 시간들이 매우 가치있다는 점을 밝혀 줬다는 점에서 고맙기도 하다.

  우리를 살게 해주는 것은 과학이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 지혜를 주는 것이 철학이라면 지금의 시간을 복되게 하며, 삶을 긍정하게 하는 것은 예술일 수 있다. 그런 예술이 폄하된다면 예술을 즐기는 인간들 역시 폄하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시도는 반갑기만 하다. 그리고 이 책은 예술을 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제공하고 그 중 독자가 적절하게 하나를 취할 수 있게도 해준다. 플라톤 식의 인식도 취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좀 더 현대 철학자들의 생각을 취하는게 좋을 것도 같으며, 그게 유행아라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을 살면서 자신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내 주변에 있는 예술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무척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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