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집스런 중년의 건축가의 자서전을 읽었다. 그 속에서 볼 수 있는 치열한 투쟁, 그리고 성공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실패와 아쉬움 등은 뻔한 이야깃거리로 넘실대는 그런 책이 아님을 느끼게 했고,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편일률적인 책의 구성과 내용은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또 그런 것이겠지 하는 일종의 낙담을 보기 좋게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류에 속하는 자서전이다.
  좀 놀랐다. 보통은 성공 사례를 쓰기 마련인데 저자는 강한 자의식과 남들과의 타협보단 보다 높은 완성도를 위해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비사교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고집은 언제나 상대와의 반목을 일으키는 것이며, 물러나지 않는다면 결국 치열한 전쟁상황을 연출하고, 다행이면 이기겠지만 불행은 어김없이 오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어릴 때 다들 알고 있는 태양의 색을 파란 색으로 칠했던 나름의 자랑스러움에 상처를 입은 사연을 어떤 점에선 비통하게, 어떤 점에서 비판적으로 서술했다. 인생이 다 그런 것이겠지 하고 넘어가기엔 어릴 때의 상처는 오늘까지 trauma로 남았나 보다.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 국제 현상에서 최고의 안이라고 평가 받았던 자신의 안이 국내 건축가들의 집중 공격으로 무너지고 가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받은 상금 5천만원을 술 마시는 데 사용했다는 부분에서 역시 저자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힘든 과정 속에서도 자신의 색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저자의 치열한 도전 의식은 읽은 이들에게 가장 울리는 뭔가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저자의 글은 간략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명확한 주제의식이나 그에 대한 냉혹하리만큼 치열한 판단이 있었다. 또한 표현은 읽는 이들에게 많은 상상을 하도록 이끌었다. 저자는 단순한 건축가가 아니었음을 알렸고, 그의 깊은 철학적 사유가 뒷받침되면서 나름 국제적으로 좋은 평가들을 얻은 작품들을 남겼다. 캄보디아 국토 계획과 프톰 펜 특별도시 구역, 취푸 신도시, 바쿠 신행정수도 기획안에서의 저자에 참여가 그런 평가를 입증한 사례다. 또한 개인적으로 멋진 건축물이라 생각하는 예술의 전당 역시 저자의 손을 거친 것이다. 단순히 좋은 것만 보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값진 사유와 철학에 무관심했던 나 자신이 조금 안쓰럽게 보이기도 했다. 좋은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인데 말이다.
  건축과 도시에 대한 그의 철학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 도시가 마련되어야 하며 건축 역시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민중의 삶과 사연을 구조물로 형상화하는 것’이라는 표현은 저자의 건축에 대해 일관되게 진행되는 마음가짐이다. 또한 과거의 현실 모두를 부정해선 안 되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하긴 과거를 벗어날 수 없지만 현실의 욕구 역시 엄연히 존중할 수밖에 없다. 인기가 덧없다 하더라도 지금을 움직이는 힘이리라. 그리고 모든 이들에 대한 고민을 해줘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건축가의 본질적 책임의식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일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치열하게 현장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게 참 좋아 보였다.
  도시와 건축이라면 필연적으로 고민하게 될 특수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고민은 결국 한국인인 저자에겐 오랜 동안 이어져 온 한국적 특성을 고민하게 되고, 그것을 반영할 수 있는 건축과 도시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자연에 대한 한국적 고민은 아마도 저자의 평생의 일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저자가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답답하단 생각이 들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도시와 건축은 저자의 생각을 빌릴 것도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함께 살아가면서도 더불어 살기 보단 경쟁시스템이 일상화되어서 자살률 1위인 나라가 되고 말았다. 자본주의의 심화로 인해 이제 계급까지 상품화시킨 고급 아파트들의 등장과 그런 아파트를 둘러싼 철조망이 거주민들에 의해 기획되고 실현되는 한국이 되고 만 것이다. 동포애를 느끼는 곳은 국가대표 팀의 경기가 있는 스타디움과 TV 정도일 뿐이다. 한국 도시의 상형문자는 그리 착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 경제위기로 인해 그런 가혹한 상징만 전달해주는 도시의 위기가 고양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 김석철의 이야기는 즐겁고 고맙기만 하다. 그런 말을 해서가 아니라 그런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병인 암을 극복할 수 있었나 보다. 좀 더 많은 활동을 했으면 하는 부끄러움 바람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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