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책이다. 솔직히 우리 중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도 공중인 시인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학창 시절 문학을 좋아하긴 했어도 교과서나 참고서에 등장하지 않는 시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베스트셀러 위주의 독서 편식증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탓에,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인기 많고 잘 나가는 작가들의 작품들만 골라 읽기에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누구나 공중인 시인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단서는 바로 공중인이 안서 김억에게서 시를 배웠다는 사실이다. 안서 김억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기억이 있는 이름이다. 그렇다. 안서 김억은 우리나라에 낭만주의 경향의 상징시를 소개한 인물이다. 우리가 잘 아는 김소월 시인도 김억의 소개로 문단에 등단했다. 그의 친일 행적이 문제로 대두되긴 하지만, 그의 문학적 업적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보면 공중인 시인의 작품 세계는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 전반에 흐르는 낭만적 정서, 한국어가 지닌 심미적 운율과 조음, 아련한 동경을 자아내는 대상에 대한 찬양...... 공중인 시인의 작품을 읽노라면 요즘은 참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낭만성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참으로 우리가 통념상 ‘시’라고 정의하는 문학 장르, 곧 어떤 대상이나 주제에 대한 우리의 감정을 솔직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운율감 있게 표현하는 작품이 바로 공중인 시인의 작품이다.

 

하지만 공중인 시인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무한히 몽환적인 낭만성에 빠지도록 방치되지 않는다. 그처럼 외관상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낭만성 뒤에는 알 수 없는 깊은 비애와 허무가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공중인 시인이 추구하는 낭만성이 현실에 부재하는 무엇인 까닭이다. 공중인 시인이 그토록 낭만성에 심취하는 것도 현실에서 발견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공중인 시인이 겪어야 했던 현실적 문제, 곧 국가적 위기나 민족의 아픔도 연관된다. 누구나 시대적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공중인 시인도 자신의 시 세계에서 현실 세계의 분위기와 영향(또는 그에 대한 반발이나 실망에서 비롯된 회피나 회의의 역설적 표출?)을 지울 수 없었으리라.

 

신경림 작가는 공중인 시인의 작품이 세간의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졌다는 점을 들어서 공중인 시인의 가치를 완전히 평가 절하하는 논평을 한다. 인생은 새옹지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신경림 작가 역시 70~80년이 지나면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이 지금 한국 문단에서 존경 받는 지위를 누리는 현실에 취해서 다른 작가를 폄하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하게 느껴진다. 그 작가가 처한 현실에서 어떤 취지와 목적으로 그러한 작품들을 창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외관적 특성만으로 작품 세계의 심처를 속단하는 것은 경솔한 태도라 생각된다. 이처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중인 시인의 『무지개』는 개인적으로 낭만적 경향의 시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제공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