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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간인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인 『죄와 벌』의 내용 전체를 7장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일종의 문학 비평서다. 대학에서 한 학기가 보통 13~16주로 구성된다고 보면, 이 책은 반 학기 정도의 강의 분량에 해당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영문학을 예로 들면, 가령 “19세기 영국소설”이라는 과목의 경우에 중요한 두세 작품을 한 학기에 강의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지금껏 줄거리 정도만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대단히 심도 있게, 그리고 전공자의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여서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무엇이 인간인가』는 대단히 반가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부터 『죄와 벌』에 대한 단편적 이해 또는 평면적 이해를 대단히 경계한다. 그래서 저자는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최소한도의 교양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배려로 축약한 형태로 출간된 『죄와 벌』을 읽는 정도로는 원작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작가의 의도를 왜곡할 위험도 있다고 경고한다. 문학 비평(literary criticism)이 작가의 의도, 작품의 배경과 구상, 등장인물의 성격, 작품의 미적 특성 및 가치 등을 다각도로 면밀하게 분석하여 종합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활동임을 감안하면, 저자의 이런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

문학 비평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문학 작품, 특히 『죄와 벌』과 같은 소설의 경우는 작가가 처음 시작하는 단어 하나부터 마지막 종결부의 마침표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요소나 부지중에 개입된 요소를 허투루 방치하는 일은 결코 없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작품의 전개에 반드시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만을 엄격한 저작 과정을 통해 포함시키기 때문에, 말 그대로 조화롭게 창조된 유기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처럼 유기적인 창작물을 일부만 발췌해서 대충 훑어보거나 단순히 줄거리만 암기하는 식으로 감상한다면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작가와 작품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저자가 『무엇이 인간인가』를 출간한 것도 바로 우리가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죄와 벌』의 줄거리는 대단히 간단하다. 주인공인 법대생 로쟈가 전당포의 노파를 살해하고 8년 시베리아 유형 판결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간단한 줄거리를 작품으로 구성하기 위해, 도스토예프스키는 6년이라는 긴 구상 기간을 거쳤고 습작노트만 3권을 쓸 정도로 정성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속기사의 도움을 빌려서 많은 분량으로 이루어진 대작인 『죄와 벌』을 완성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처럼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쳐서 쓴 책이라면, 거기에는 단순히 스토리만을 읽고 즐기고 그것으로 끝내면 안 되는 무언가가 담겨 있음에 분명하다. 스토리 위주의 독서가 놓치게 되는 측면이 바로 이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읽어주기를 바라는 원의(原意)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스토리 위주의 독서가 지니는 맹점이다.

『무엇이 인간인가』는 그 제목이 시사하듯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찾아낸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특별히 뉘우치는 기색이 없는 주인공 로쟈는 단순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에만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감각을 상실하고 물질주의가 약속하는 구원(안락)에 맹목적으로 매몰되어가는 현대인의 원형이다. 로쟈는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애초부터 망각하고 방향을 잃은 채 (사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소모적인 현대인의 표상이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가 주인공 로쟈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양한 문화와 시대와 장소에서 여러 가지 방향으로 해석되고 평가될 수 있겠지만, 『무엇이 인간인가』에서 저자가 포착해낸 핵심은 바로 ‘인간다움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재고’라고 할 수 있다. 문학 작품이 수행하는 순기능 중에 하나가 이처럼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환경 속에서도 인생의 가치나 목적, 인간의 고유한 품성과 자질의 항구성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일깨우고 상기시키는 것임을 감안하면, 저자는 『무엇이 인간인가』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이와 같은 문학 작품의 기본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검증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죄와 벌』을 다시 한 번 새로운 자세로 차분히 제대로 정독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다(개인적으로는 『무엇이 인간인가』를 읽으면서, 제목에 사용된 “죄”와 “벌”이 단순히 선후관계가 아니라 “죄”를 짓는 순간부터 따라다니기 시작하는 죄책감 자체가 이미 당장 시행되는 “(징)벌”이라는 통찰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시간에 쫓겨 『죄와 벌』을 제대로 읽을 기회가 없었거나 단순히 스토리를 기억하는 수준으로 읽은 사람이라면, 『무엇이 인간인가』의 도움을 받아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에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심층 메시지를 찾아나서는 탐험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