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독특한 이력의 인문학 서적이 출간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낮은 인문학』이다. 이 책은 특히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독특하다. 첫째, 이 책은 대한민국 상아탑의 대표격인 서울대학교의 인문학 교수들이 각자의 전공분야에서 쌓은 지식의 성과 중 일부를 강의 형식으로 소개했고 그렇게 소개된 내용들을 엮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덕분에 독자는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누릴 수 없는 명 강의들을 이렇게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지불하고 방 안에서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릴 기회가 생겼다.

 

둘째, 이 책에 수록된 강의들은 서울남부교도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베풀어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지성의 상징격인 서울대 교수들이 사회봉사 차원에서 그런 활동을 기획하고 시행한 것으로 단순하게 평가(절하)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학계가 단순히 상아탑 속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사회정신을 선도하는 순기능을 수행하는,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듯한 하나의 모델을 보는 것 같아 대단히 신선하면서도 반갑게 느껴진다.

 

이 책은 제목부터도 대단히 중의적일 뿐 아니라, 이 책의 성격과도 잘 맞는다. 그 이유는 “낮다”는 낱말이 지니는 사전적 의미들 때문이다.

 

우선, 요즘 한국사회는 인문학이 대세다. 그만큼 인문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거기에는 심각한 부작용도 수반되는데, 모든 것을 인문학이라는 수식어로 포장하면 수지맞는 장사가 되다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인문학을 들고 나온다. 그러니 이처럼 엄청나게 쏟아지는 인문학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의 독자는 표류할 뿐 아니라 심지어 깊이나 내용 수준이 일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낮은” 인문학에 노출되기 싶고, 그 때문에 오히려 인문학 열풍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낮은 인문학』은 우리나라 대표적 지성들이 저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인문학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반가운 책이다. 『낮은 인문학』을 읽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우후죽순처럼 수없이 출간되는 인문학 서적들의 내용과 질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일정한 잣대가 독자의 내면 인식 속에 생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음으로, 인문학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과 고민에 답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학문들이다. 따라서 인문학은 우리와 대단히 친숙한 학문 분야여서 인문학이 없는 삶이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은 지위고하,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할 뿐 아니라 평등한 접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인문학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은 대단히 겸손하면서도 솔직하며 누구에게나 개방된 “낮은” 학문이어야 한다. 『낮은 인문학』은 이처럼 인문학의 개방성을 현실에서 실천한 성과를 반영하는 작품이어서 더욱 관심이 간다.

 

『낮은 인문학』은 현재 광풍 수준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인문학 열기에 새로운 동력원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 인문학 열기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체질과 정신을 근본적으로 쇄신하는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일정한 방향성(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지금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필독서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