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이력이 놀랍다. 청년 시절 파타고니아에서 목동 생활을 하고 싶었다니, 지금도 문수산 기슭에서 생활한다니, 도시 생활에 익숙한 내게는 경이로움 자체이다. 또한 내게는 모국어인 한국어로 글쓰기도 힘들고, 꽤 오랫동안 남미에서 생활해서 스페인어를 대체로 잘 구사한다고는 하지만 시 한 줄도 써 본 적이 없는데, 과연 시인은 타고 나는 것일까? 저자는 멕시코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중남미 시인으로 데뷔한다. 스페인어로 된 시집과 국내 시집도 출간했다.

 

 

이렇게 중남미 문학에 익숙한 저자가 체 에르네스토 게바라에 대해 책을 출판했다. 게바라가 40여 년 전 사망할 당시 그의 유품으로는 색연필로 덧칠이 된 지도와 비망록 두 권, 그리고 녹색 스프링 노트 한 권이 있었다. 저자는 이 녹색 스프링 노트에 관심을 갖고, 중남미 시인들과 문학사들을 방문, 인터뷰한 것과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을 집필했다.

 

이 녹색 노트에는 게바라가 좋아했던 네 명의 시인들의 시가 적혀 있다. 이 시인들은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콜라스 기옌과 레온 필리뻬이다. 이들 중 바예호를 제외한 다른 세 명의 시인들은 개인적으로 게바라를 잘 알고 있었다. 서로의 이데올로기가 비슷해서인지 게바라는 이 시인들의 시를 필사하면서 그의 내면세계를 묘사하고자 했다.

저자는 게바라가 아프리카, 쿠바 & 볼리비아에서 게릴라로 활동하면서 필사한 시들을 소개하면서, 당시 각 나라의 상황 또한 설명한다. 시대적 상황과 게바라를 알고 지냈던 이들의 회고를 통해서, 게바라의 심경을 추측하는 것이다. 게바라는 민중의 슬픔을 묘사하기 위해서 아프리카 노예들의 삶을 묘사한 시들을 필사했고, 자신의 결혼 생활, 이혼, 사랑 등의 감정을 위해서는 사랑 시들을 필사했다. 그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이별, 죽음에 대한 시도 필사했음을 볼 수 있다.

 

 

체 게바라, 별 하나가 달린 베레모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과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라는 사실밖에 아는 것이 없는 내가 구광렬님의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을 읽었다. 다른 장르와 달리 시를 읽는 것은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한다. 더군다나 게바라라는 인물이 좋아했던 시들을 읽을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혼란한 시대상을 그리며 시를 읽기에 마음도 혼잡해진다. 이 책을 통해서 1960년대의 세계와 게바라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자신의 이념을 위해 가정과 명예도 포기한 게바라의 유가족들의 염원처럼 이 역사적 인물이 ‘상업 아이콘’ 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