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인 개념 위주로 쓰인 교과서 내용을 따라 공부할 때마다 머릿속으로만 그 내용을 암기해 가는 학습은 시험을 풀고 나면 이내 사라지고 마는 물거품 같은 일회용 지식으로 전락하고 만다. 시대적인 순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암기하며 지내던 부모들 세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국사 공부 형태를 보면서 문화유적지를 답사하며 그 깊이를 체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해졌다. 지방에 거주하고 있어 서울로 향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학 때면 아이들과 함께 찾을 곳을 미리 정한 뒤 도서관에 비치된 책을 바탕으로 동선을 고려해 답사 코스를 잡아 길을 떠난다. 지난 여름방학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봤던 동궐도는 창덕궁과 창경궁에서 열린 행사를 병풍에 담아 그 시대의 풍속을 가늠케 하는 단서가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고궁 박물관을 관람한 뒤 경복궁으로 향하는 코스로 궁궐 답사를 떠났다. 한꺼번에 많은 곳을 보기보다는 동선을 고려해 답사 코스를 잡아 느리게 걸으며 가슴에 담아 그 향기가 오래 갈 수 있는 답사를 떠날 때가 종종 있다.

 

 

  <<아빠가 알려주는 문화유적 안내판>>은 안내판 내용에 아빠의 해설을 곁들인 답사 길라잡이로 관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소중한 책이다. 5대 궁궐을 돌아 종묘를 지나 박물관 탐험에 이어 조선 왕릉 걷기를 마치고 돌아오다 보면 어느 새 문화유적에 대한 애정이 배로 늘어나게 된다.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뤄 자연친화적인 경복궁은 언제 둘러 봐도 정겨운 궁의 모습이라 과거 왕이 정사를 돌보던 정전이 있던 곳이라니 그 감회가 남다르다. 왕의 침전인 강녕전, 그 뒤에 자리하는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 구중궁궐에 갇혀 사는 중전의 시름을 달래는 위로 공간인 후원 아미산 등을 돌아 신하들이나 사신들에게 연회를 베풀던 경회루 등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 하지만 조선 최초로 전구가 달렸던 건청궁에서 머물던 명성황후가 일본인 자객으로부터 시해당한 울분의 역사가 서려 있어 약소국의 비애를 더했다. 세종 대의 우수한 두뇌들이 모여 한글을 창제했던 집현전이 있던 수정전을 끝으로 경복궁 관람은 끝이 난다. 임금이 살던 지엄한 궁궐 창경궁이 일제는 식물과 동물을 길러 창경원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니 제국주의의 횡포가 커 보인다. 그런 만큼 과거에도 조선 영욕의 세월이 녹아 있는 창경궁은 사도세자가 아버지 손에 죽게 된 명정전, 정조 임금의 독살설의 진실이 가려진 영춘헌, 인현왕후를 둘러싼 장희빈의 저주가 잠들어 있는 통명전 등을 둘러보고 유네스코에 등재된 유일한 궁궐 창덕궁으로 향한다.

 

 

  비원(秘苑)으로 알려진 창덕궁은 주변 자연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배치로 사랑받는 후원은 왕의 휴식 공간을 넘어 시와 학문을 논하며 군사훈련을 벌이던 곳으로 문무 과거의 최종 시험이 치러지던 곳이라 급제를 꿈꾸는 이들의 선망하는 곳이라니 열혈남아들이 기량을 선보이던 열정의 공간으로 색다른 감흥을 줬다. 연꽃 모양을 한 부용정은 부용지에 배를 띄우고 시화를 즐기거나 낚시를 즐겼고, 규장각을 왕립 도서관으로 확충하고 그 위에 열람실 겸 휴게 공간인 주합루를 만들어 정조는 자신의 개혁정치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조선시대에는 경운궁으로 불렸던 덕수궁은 화재로 주요 건물이 불타고, 식민지와 산업화 과정에 그 모습을 잃어버렸다. 고종은 자신의 연호를 광무라 지었고, 중국의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지낼 수 있다는 금기를 깨고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조금씩 자주성을 회복해가는 모습으로 비춰지지만 일제에 나라를 잃는 굴욕적인 현실 앞에 나라의 슬픈 운명은 함녕전에서 마지막을 맞은 고종의 모습과 겹쳐져 민족의 아픔이 더했다. 한창 때는 전각만 해도 120채가 넘었다는 경희궁은 공중 분해되어 몇 채 남지 않은 건물만 그 자리에 남아 5대 궁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라니 문화 유적을 고스란히 지켜내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해 보인다. 새어머니 인목왕후가 영창대군을 낳자 왕위계승이 불안해진 광해군에게 새문동에 왕기가 있으니 역모를 막기 위해 궁궐을 지어야 한다는 술사들의 청을 받아들여 경희궁은 창건되었다. 경희궁은 경술국치를 맞아 조선총독부 소유로 넘어가 전각들이 철거돼 궁궐의 위엄을 잃게 되었다니 안타까움이 늘어난다. 조선 국왕의 혼이 잠들어있는 종묘는 왕이 제사를 지내던 절차를 밟아 재계를 하던 목욕탕에서부터 신위를 모시는 영녕전에서 제사를 모셨다. 유일하게 개방하고 있는 향대청은 가족 제기 뿐 아니라 종묘제례 절차를 살필 수 있는 안내문과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넓은 건물의 규모에 수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안내판을 징거다리삼아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곳이다. 조선 시대 궁궐을 둘러본 뒤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기에는 고궁박물관 관람이 안성맞춤이다. 경복궁을 관람하고 나와 고궁박물관을 찾는 것도 시간 절약하는 방법이 될 듯하다. 산모가 아기에게 영양을 공급해주는 탯줄은 왕실에 태어난 아기의 경우 탯줄을 물로 100번 씻은 후 술로 한 번 더 씻어 태실에 보관 되는것만 봐도 왕실에 태어난 아기의 탯줄은 생명 줄이었다. 왕세자의 일과는 수험생보다 더 혹독한 수련과 경연 과정을 거쳐 훗날 왕으로서 선정(善政)을 베푸는 이로 자리할 수 있도록 특별훈련을 거쳤다. 서울 역사의 변천사를 알아볼 수 있는 서울 역사박물관 관람에 이어 조선 왕릉을 걷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 짓고 있다.

 

 

  왕족의 무덤은 주인의 신분에 따라 이름이 달랐는데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나머지 왕족의 무덤은 보통의 경우처럼 묘(墓)라고 불렀다. 능 입구에는 잡귀를 막는 홍살문이 있어 신성시하는 공간임을 알게 해준다. 버들잎을 띄운 사랑이야기로 알고 있던 처녀가 태조 이성계가 사랑한 신덕왕후 강 씨라니 더욱 흥미로워 답사기를 읽다 보니 사후 정릉에 홀로 안치되어 고독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여기니 행복한 인연이 무엇인지 반문하게 된다. 서른 셋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경종은 병상에 오래 있다가 4년 만에 죽어 의릉에 묻혀 죽어서도 권력에 휘둘린 불행한 왕이었다니 희빈 장 씨의 악한 기운이 아들에게도 미친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들었다. 정릉처럼 왕비 혼자 잠들어 있는 문정왕후는 중종을 여의고 아들 명종이 재위하는 기간 수렴청정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실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명종이 묻힌 강릉은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고 태릉은 조선왕릉박물관까지 갖추고 있다니 세도 정치의 정점에 섰던 문정왕후의 태릉에 시립한 무인석과 문인석도 인상적이라니 이번 방학에는 태릉에 가보고 싶다. 아이에게 사진과 안내문에 적힌 해설서를 발췌해 조곤조곤 설명해 주는 저자의 글에 Tip으로 설명해 주는 역사 상식 이야기는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을 풀어 주고 흥미까지 유발하여 답사 길잡이로 제 기능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