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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을 갈무리하는 날 바람 빠진 풍선처럼 공허함과 심드렁함으로 가득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책을 찾던 중 <<뭐라도 되겠지>> 책을 보는 순간 구매를 서둘렀다. 그동안 들인 정성과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자 가슴 한쪽이 뻥 뚫려 황소바람이 불어오던 때 허탈함을 달래 줄 말 ‘뭐라도 되겠지’는 보이지 않는 희망으로 다시 힘을 내게 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속상한 마음을 하소연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회한만 가득할 뿐 어차피 스스로 감내하며 가야 할 일이라면 입을 다물고 깨어 있는 의식으로 줄글을 읽어가는 수밖에 없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실패를 거듭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중년에 이르렀다. 실패 없는 인생이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간과한 채 성공하는 살만 꿈꿔왔던 것이다.

스물다섯이 될 때까지 소설가 김중혁은 뭐 하나 잘난 것 없이 남들처럼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는 그는 정말 그저 그런 인생이었다고 말하였지만 조바심 내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카툰과 일러스트에 담아냈다.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기보다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한 게 지금의 특별한 소설가로 자리하게 한 원천인지도 모르겠다. 딸의 대학입학 수시 전형의 실패가 마치 그녀의 인생이 결딴이 난 것처럼 과장하여 자식의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을 설쳐가며 고통스러워했다. 엄마가 이렇게 힘들 때 딸의 심적 고통은 곱절로 더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괜스레 괴란쩍어진다. 작가의 산문집을 읽으며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 해결의 열쇠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산문집은 여느 책과는 달리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만 문득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유한한 인생 뭐 별 거 있냐며 놀 수 있을 때 한세상 잘 놀고 가자며 어떻게 놀 것인지 고민하다 이런저런 호기심을 충족하는 광경이 따스하게 전해지는 것은 마흔 중반을 훌쩍 넘어서였다. 친구들 중 한둘은 서둘러 이승을 등지고 또 어떤 이는 외국으로 나가 소통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지금 곁에 있는 이들과 소통하며 사는 일이 화두처럼 자리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냉소적인 묘비명이 각인하는 것처럼 불투명한 미래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소설가의 말처럼 현재 어떤 방향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할 지 가늠케 한다.

짤막한 산문 56편은 가볍게 읽히지만 글 속에 담긴 저자의 진정성과 세상을 향한 따뜻함은 지금 실패한 순간이더라도 다시 일어나 새롭게 개척해 나간다면 괜찮다고 힘을 준다. 실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보다는 실패임을 알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유연성과 개방적인 태도가 소중함을 넌지시 말하며 저자의 일화를 털어 놓기도 한다. 구멍가게 주인의 아들로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때도 있었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풀어가기 위해 어머니는 가게 옆 포장마차에서 도넛을 만들어 팔았지만 그마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도넛 만드는 과정을 익히는 일부터 시작했다는 부분에서 초심자의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소설가로 입지를 다져 갈 수 있다고 회고하는 대목에서 대학시절 학사 경고와 맞바꾼 싱싱한 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부분에서 위안이 된다.

존재하지 않는 답을 찾기 위해 세상의 소소한 일까지 세심히 관찰하며 카툰에 그 사실을 담고 스토리를 만들어감으로써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인내가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재능은 천부적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흐르는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는 시간 속에 잉태되는 것임을 일깨우는 장면에서는 선택의 연속인 삶에 한가로운 삶을 선택하며 많은 것을 포기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잘해낼 재간도 없으면서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거머쥐려는 오류를 범하며 늘 숨 가쁘게 살아왔던 점을 반추한다. 예민한 감각으로 일상에서 고통을 받는 축에 드는 작가는 진정한 남자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잘 노는 법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며 어린 시절에 행했던 추억의 놀이에서부터 명절에 모인 30대 후반의 친구들과 야구 경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

살아가는 일이 힘이 들수록 웃음이 얼굴에서 사라지고 그늘진 주름만 늘어갈 때가 있지만 작가는 돌려 생각하고 느긋하게 살아보기의 명수처럼 비춰진다. 통지표에 통신란을 주홍글씨처럼 장식하던 산만한 아이라는 불명예는 일본 동화 작가 고미타로의 글을 통해 그 때 받은 상처를 치유하며 위안을 받아 자구책을 찾는 모습은 낙관적인 태도에서 기인했다. 운동복차림으로 택배 물을 기다리다 택배 기사를 찾아 나섰다 물건을 조금 일찍 받고 뿌듯해하는 일화는 웃음을 자아낸다. 유머로 세상을 바꾸려는 장진 감독과 소통하며 시니컬한 유머 작가 보네거트를 존경하는 부분은 공통분모로 작용하는 웃음의 철학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을 탈고한 뒤에는 혼자서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신다는 작가의 말대로 영화와 책, 방송과 음악 등 다양한 취향에서 느낄 수 있는 일상의 단상을 들추며 소설가 김중혁 씨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의 내밀한 부분을 조금씩 알아간다는 것은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고 우리로 나아가는 길 어귀에 서서 연대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