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는 부처님의 기르침을 담은 숫타니파타의 구절이 떠오른다.

꿈 많던 대학 시절 우정을 쌓으며 동창인 혜완, 영선, 경혜는 대학 때부터 단짝처럼 붙어다니며 많은 추억의 시간을 공유했던 친구들이다. 각기 다른 삶을 꿈꾸며 살던 이들은 우연성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 속에 한 상대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지마는 생각만큼 결혼 생활이 잘 풀리지 않아 고뇌가 늘어나고 있었다.

 

 

   학창시절 자신들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며 저마다 현명하고 당당한 여성임을 자부해왔었는데 학교를 졸업한 뒤 각자의 능력과 역량을 자신하며 결혼함으로써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앞섰다.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적어도 헤매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이유를 믿으며 지내고 싶었지만 생각만큼 결혼 생활은 가볍게 볼 것이 아니었다. 작가 혜완은 돌연한 사고로 아들을 잃고 그 상처를 견디지 못하는 남편의 이혼 강행으로 남편과 결별하고 상처를 온 몸으로 떠안고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였다. 이혼 후 새로운 생활과 맞닥뜨리며 홀로서기를 익혀 가는 동안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남자의 그늘을 의식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환멸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소심함을 보이기도 한다.

 

  

   조건만을 보고는 의사 남편 만나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며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남편의 바람까지도 감수하며 지내야 하는 고통스러움이 경혜의 결혼 생활에서 묻어난다. 경제적인 불균형으로 맺어진 부부의 경우 부족함이 있는 어느 한쪽의 희생은 고독한 결혼 생활을 잇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때가 종종 있다. 서로가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만으로 지탱하기에도 힘든 연애 생활을 종지부 짓고 결혼한 영선이지만 결혼 전부터 있어 왔던 집안의 반대는 결혼 후에도 그들의 부부 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치며 화근으로 작용할 때가 많았다. 영화감독과 결혼한 영선은 유리알 같은 부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그 생활을 유지하려는 욕망이 겹쳐지며 측은함이 더했다.

 

  

   결혼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온 두 사람이 만나 기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자식을 낳아 기르며 한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여러 외적인 요소가 기민하게 작용해 부부를 힘들게 할 때가 종종 있다. 대학 동기인 경혜와 영선, 혜완의 결혼 생활을 보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배려하는 가운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가는 일이 녹록치 않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결혼 생활 21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가치관의 차이로 힘들어 할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선험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이뤄져야 할 듯하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일을 감수하기보다는 차라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필요가 있는 우리네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