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을 엄격히 지키며 대중에게는 너그러웠던 스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을 훌쩍 넘기고 또 다른 계절을 맞았다. 휑한 바람이 불어 마음 한쪽이 떨어져 나간 날 출가를 결심하고 산문으로 들어간 법정 스님의 법랍 1년부터 시작된 편지글은 빛 바랜 편지지 속 구절들로 남아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삶을 추모한다.  수행자의 길을 걸음으로써 당신의 운명을 개척하여 고해의 나락에 빠져 헤매던 중생들을 감로법으로 열반에 들었던 것처럼 동생은 자기 나름대로의 길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깊이 사색하며 책을 읽으라고 당부를 잊지 않았다.

 

  ‘나라는 존재는 그저 먼 날에 죽어버렸거니 생각하여라. 편지는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안 하는 것이 좋다.’

는 스님의 메시지는 불법 공부에 정진하려는 구도자적인 삶과 자식으로서 어머니 봉양을 못다 한 점이 내내 마음에 남아서일 것이다. 흔들리지 않을 경지에 이르러 남에게 스승일 될 만한 경지에 이르면 마을에 내려가 중생을 제도하려는 뜻을 비친 스님은 하화중생을 목표로 삼아 출가인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자기가 사는 주위만은 자기 색(色)으로-자기 개성을 풍길 줄 아는 ‘멋’을 지녀야 한다며 당부하던 스님은 동생 성직에게 좋은 것을 골라 읽으며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해 할 정도로 동생이 양서(良書)위주로 독서하길 바랐다. 소포를 보낼 때는 시멘트 포대 종이로 잘 싸고 노끈으로 묶은 뒤 부치라는 그림까지 곁들여 세밀함을 더했다.

 

   동생이 보내 준 답신에서 스님이 속가에서 거처하던 방의 냄새를 맡으며 향수에 젖는 모습을 그려 본다. 선택의 길 앞에 숱한 방황이 있던 고 3의 동생에게 많이 번민하고 사색하라는 말과 함께 곁에서 도움을 주지 못하는 스님의 애틋함이 배어났다. 문학청년이었던 스님이 현대문학을 구독하고 훗날에는 현대문학에 스님의 글이 실려 <<무소유>>로 출간되었다니 책과의 인연이 특별해 보인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아우 성직과는 할머니와 함께 어릴 때부터 한 방에서 지내며 쌓은 정이 두터웠으리라. 고난을 겪는 사람은 행복하게만 사는 사람보다는 인생에 대해서 경험이 많아서 자신감이 생기고, 또한 생활에 대한 저항력도 기러지는 것이라며 인생의 체험을 중시하였다. 술을 마시면 지혜종자가 없어진다는 부처님 말씀을 뇌며 술로 건강을 잃고 곤궁해진 집안 내력을 들어 술을 경계하라는 스님의 말씀을 따르며 살지 못하는 생활이라 부끄럽기만 하다.

 

행복은 사금처럼 가벼이 날아가 버리지만

불행은 두고두고 네 마음속에서

인생의 문을 열어 주는 귀한 열쇠가 되리라.

부디 불행에 굽히지 말고 살아라. (120쪽)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돼라. -불타(佛陀)-

 

   진실함은 통하지 않음이 없을 테니 설사 눈앞에서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진실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거짓됨과 비구에 타협하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은 사부 대중이 새겨들을 일이다. 스무 살 전후에 독서하지 않고 지나가는 인생처럼 적막한 인생은 없을 것이라며 실례를 들어 책 읽기를 강조하였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책이 미래의 나를

형성하는 토대가 될 터이니 바른 생각을 전하는 책을 부지런히 읽을 일이다. 자작자수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라는 경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늘 곁에서 짐을 주는 이들을 원망하며 그들만 없으면 삶에 걱정이 사라질 것처럼 여겼는데 실상은 스스로 지은 업보를 지금 받고 있을 뿐이다.

 

   세상일에 초연한 수도승으로 자리하기보다는 한 자연인으로 진리를 모색하는 철학도가 되고 싶었다는 스님은 경쟁사회 속에 처져 있는 중생들에게 보석 같은 글로 마음을 울렸나 보다.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글을 많이 읽고 사유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스님은 세계적인 문학까지 섭렵하며 사유의 깊이를 더했다. 이미 읽어 왔던 스님의 글과는 다른 인간애가 더욱 강한 편지글 모음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벗들과의 소통이 떠오른다. 서로를 배려하고 위해 주는 가운데 정을 두텁게 하여 신의를 더하는 빛과 소금 같은 멘토로 스님은 영원히 우리들 가슴에 남아 숨 쉬게 한다.  

 

자작자수박성직법정독서유달영인생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