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가난은 또 다른 살기를 띠고는 하루하루 생존하기 힘든 이들의 삶을 옥죄어 무기력함 속에 시간을 죽이며 지내야하는 궁지로 이들을 몰아넣기도 한다. 추운 겨울 참혹한 궁핍에 눌려 목숨을 보전하는 일조차 수월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변에는 많이 있다. 일정한 거처도 없이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 굶주림까지 면하지 못하는 이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은 현실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의 마뜩찮음은 심연 깊숙이 자리한 부정의 씨앗을 싹틔울 때가 종종 있다.

 

  결핍을 벗어나려는 욕구가 커갈수록 인간의 삶은 궁색함을 면하지 못할 때 무력감은 더해진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타파하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 아래 범법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감성이 풍부했던 법학도로 다소 몽상에 젖어 지내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자본의 부정적인 힘을 믿으며 경제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핍박하는 이를 제거하려는 일을 정당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인색한 전당포 노파를 고리대금업을 일삼는 악의 축이라 결론짓고는 정의의 사도가 된 듯 그녀를 살인하고 응징함으로써 죄책감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성적 잣대로 공공의 선을 실현했다는 변명으로 나약한 자신을 포장해보지만 라스콜리니코프는 죄의식의 늪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었다.

 

  가난에 시달리며 가진 것을 저당 잡히고 소액 자본에 끌려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는 소외계층들의 일상적 삶은 참혹하였다. 가족 부양을 위해 몸을 팔아 생계유지를 돕는 소냐, 오빠의 학비 마련과 가정 유지를 위해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서두르는 두냐를 지켜보면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정당한 것처럼 위장하면서도 살인의 공포와 정의의 실현이라는 환영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사람을 죽여도 좋을 비범한 권리를 타고난 자신이 살아남아 선을 실현하는 영웅으로 자리하고 싶었던 소망이 그에게 잠재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저지른 일로 또 다른 선의의 피해자가 고초를 겪음으로써 그의 가슴에 자리한 도덕적 양심은 불안한 심리 표출로 드러났다. 선택적 의지로 악의 축을 물리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달래며 지내보지만 수사망이 점점 자신의 목줄을 옭아매어 오고 있다는 것을 라스콜리니코프는 알아차렸다.

 

  치밀한 논리력으로 살인을 저지른 죄인을 집요하게 추적하던 포르피리에게 허를 보이고 만 그는 진정한 자유와 힘의 논리를 얻기 위한 싸움에서 굴복하고 말았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숱한 이들에게 짓밟혀 왔으면서도 신앙심을 통해 그들을 용서하고 배려하며 지내는 소냐에게서 또 다른 구원자의 모습을 봤는지도 모른다. 자신은 악마의 대리자로 불합리한 세상 구조를 타파하고 개혁하려는 결단 아래 노파를 죽였다고 소냐에게 범행을 자백하였다. 목적이 옳다면 개인적 악행도 용납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죄를 짓고 그 벌로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동행하는 소냐를 봄으로써 진정한 사랑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혹독한 추위와 결핍으로 점철된 현실을 감내하며 그의 새로운 삶을 소망하고 축복하는 가운데 희망을 발견한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며 그 행복을 찾아 먼 길을 떠나기도 한다. 뜻하지 않는 일로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에 맞닥뜨리는 현실은 감내하는 만큼 또 다른 삶의 깊이를 더할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영어의 몸으로 죗값을 치르며 삶의 희망을 저버릴세라 그의 곁에서 사위어가는 생명의 불꽃을 다시 피워내려는 소냐의 숭고한 사랑은 의롭게 다가온다. 고통스럽게 형량을 채워 나가는 길이 불행하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힘을 주고 그 끈을 이어주려는 조력자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