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곁에는 잡을 집(執) 글자가 머릿속을 지배했다. 길이 아닌 일을 타인이 시켰을 때는 뜻을 꺾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강해 다른 이들과 적절히 타협하며 조화롭게 지내기 힘들 때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뜻을 꺾지 않는 행위는 아집과 독선에 젖어서일 것이라는 판단아래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과도기적 상황에 80년대라는 긴 터널을 통과한 386세대들이 보냈던 30년 전의 10대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남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기억이 먼저 난다. 그에 비해 21세기를 열어가는 청소년들은 체격은 커졌지만 유약함을 벗어나지 못한 채 조금만 힘들어도 좌절하고 마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모비딕에게 한 다리를 내주고 의족을 한 선장 아하브는 자신은 모비딕을 잡으려는 집념으로 뭍에서 멀리 떨어져 40년 째 파도와 싸우며 지내다 심양 속으로 스러져갔다.

뭍에서의 단조로운 생활에 염증을 내고 우울한 생각들이 빚어낸 중압감을 견디지 못한 이스마엘은 해안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동경하며 신비로운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고래잡이용 배가 망망대해 위에서 자급자족할 생필품을 구하러 뭍으로 나왔을 때 고래잡이배에 오르기 위해 그는 나름대로의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이틀 밤을 함께 지낸 퀴퀘크와의 만남은 두려움을 떨치고 상대를 배려하며 따뜻한 정을 나누는 일이 소중한 가치임을 일깨워준다. 부족이 보다 편안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다른 부족에게 배우기 위해 승선했다는 퀴퀘크는 자못 의미심장해 보인다. 그들은 서로를 소개하며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할 형제로서의 의식을 치르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잊지 않았다.

포경선에 오른 이들은 하나같이 향유를 얻으려는 욕망으로 가득했다. 둥근 공 위로 물을 뿜는 흰 고래 모비딕을 만나면 소리쳐서 모비딕 출몰을 알려 선원들 모두는 긴장한 채 놈의 행적을 주시하며 작살로 흰 고래를 잡아야 했다. 사람들에게 잡혔다 싶으면 교활하게 빠져나와 역습을 하는 흰 고래는 선장의 한쪽 다리까지 앗아 가버렸다. 한쪽 다리를 잃은 뒤부터 모비딕을 잡으려는 열망만으로 망망대해 위의 숱한 역경과 싸우며 유언장까지 작성하며 결단력 있게 추진해 나갔다. 1등 항해사 스타벅은 선장의 아집이 힘없는 선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며 더 이상의 모비딕 사냥은 무모하다고 말했지만 그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모비딕 안에 있는 향유 기름을 얻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피쿼드 호의 선장 아브라함은 만선하려는 집념으로 혈육을 떠나보내고 막내아들까지 뱃일을 시키려다 실성한 구포 댁의 거센 반대에 맞닥뜨리지만 고집을 꺾지 않은 곰치의 모습과 닮았다. 오로지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수십 년 간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고 생활하게 한 토대를 마련했을 듯하다. 아하브 선장은 모비 딕은 자석 같은 존재로 지구 끝까지 쫓아 가 흰 고래를 잡아야 한다는 숙명적 과제로 고래잡이배 본연의 목적은 잊은 채 흰 고래를 쫓기에만 열중했다. 고래잡이에 나선 딴 나라 배를 만나면 모비 딕을 봤느냐고 첫 물음을 던졌다. 오로지 흰 고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온갖 신경을 모으며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앗아 간 일을 응징하는 심판관처럼 모비 딕을 찾아 헤맸다.

자신의 뼈를 부러뜨릴 수 있어도 의지는 꺾을 수 없다며 모비 딕을 추적하던 둘째 날 동료를 잃었으면서도 정에 끌려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다시 배 주위로 나타날 모비 딕 사냥에만 집중하는 선장의 모습은 광기어린 모습으로도 비춰졌다. 피쿼드 호 선원들은 사흘 밤낮 동안 모비 딕과 사투를 벌이며 흰 고래를 잡으려 했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카누처럼 생긴 관에 염하는 관습을 따를 수도 없이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채 파국을 맞았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종말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썩은 고래의 내부에 있는 기름을 얻기 위해 고래를 다듬다 그만 떨어져버린 이를 구해 준 퀴퀘크는 험악한 외양과는 달리 인간애를 가직하고 사는 의협심이 강한 인문이었다. 피쿼드 호 선원은 모두 익사했으며 유일한 생존자는 뭍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느껴 고래잡이배에 올랐던 이스마엘뿐이었다.

자신의 한쪽 다리를 앗아간 모비 딕에게 복수하기 위해 바다 위에서 40년 동안 생활하며 끝내 바다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아브라함의 집념은 대단해 보인다. 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악조건을 유예하며 모비 딕을 잡으려는 일념이 흰 고래의 공격으로 스러져 간 선원들의 죽음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반문해 본다. 계약 내용을 이행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진대 피쿼드 호 선원들은 선장의 결연한 태도에 눌려 모비 딕을 잡아야 했다. 전문가로서의 길을 걷기에는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가기보다는 한 우물을 파는 게 훨씬 더 깊이 있는 경험 속에 체화할 수 있는 힘이 커진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한 번쯤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일이다. 선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희생이 따른다면 차선책을 강구하는 게 합리적인 일이다. 어느 누구도 상대의 생명권을 부릴 수도 없으니...................

모비딕향유고래보이는것만이전부가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