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게, 끝난 게 아니다... 『샌드맨』

 

 

살인이 분명 범죄는 맞지만, 그 범죄자의 길로 들어선 과정을 듣다 보면 이해와는 조금 다른, 그저 그 마음을 잘 알아들었다는 끄덕임이 나올 때가 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건 변함없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일이 쉽게, 간단하게 용서할 수 있는 범주의 문제는 아니므로. 비록 그 이유를 알겠다고 끄덕였어도 말이다. 다만 살인의 동기가 그렇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라고 해도, 어떻게 그런 일로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느냐고 놀랐다고 해도, 그 이유가 당사자에게는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만 하는 의무처럼 새겨질 수 있다. 라르스 케플레르의 소설 『샌드맨』은 연쇄살인범 유레크의 범행이라고 믿고 있지만, 유죄를 증명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아무도 몰랐던 그의 과거를 하나씩 들춰낸다. 그래도 여전히 그의 범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한 사람을 알아가는, 한때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원망과 분노를 보는 계기를 만든다. 그가 그토록 잔인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하나씩 들을 때마다 그의 범죄에 같이 빠져들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처음부터 연쇄살인범 유레크 발테르의 무죄 주장으로 시작한다. 13년 동안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갇혀 있는 그를 다시 관심 대상에 올릴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진다. 13년 전에 그가 납치했다고 알려진, 7년 전에 이미 사망 처리된 소년 미카엘이 돌아온 것. 그는 감옥 같은 폐쇄병동에 있었는데, 미카엘은 왜 13년 동안 돌아오지 못하다가 이제야 나타날 수 있었을까. 그를 잡아넣은 형사 유나는 죽은 줄 알았던 미카엘이 살아 돌아옴과 동시에 유레크의 유죄를 분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온 거로 생각한다. 유나가 의심했던 공범의 여부도 밝혀낼 기회다. 그래서 미카엘의 증언이 필요하다. 범인의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미카엘이 유일하다.

 

"미카엘은 자신을 납치한 사람을 샌드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레이다르 프로스트에게 물어보니 샌드맨은 애들 어머니가 잠자리에서 들려주던 동화 속 인물이라고 하더군요. 샌드맨은 아이들의 눈에 모래를 뿌려 잠들게 만든다는 잠의 정령을 의인화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186페이지)

 

'샌드맨에게서 모래 냄새가 났어요. 그의 손가락은 도자기로 만든 것 같았고 가방에서 모래를 꺼낼 때면 손가락들이 부딪치며 쨍그랑 소리가 났어요. 그리고 잠시 후엔 잠에 빠지곤 했어요.' (547페이지)

 

범인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았고, 오랜 시간 갇혀있던 미카엘은 한 번도 범인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다만 그의 흔적을 기억할 뿐이다. 어릴 적에 엄마가 들려주던 동화 속의 샌드맨이라고 부르며 모래 냄새가 났다는 거 외에는 아무런 단서도 없다. 모래 냄새라는 게 얼마나 단서의 역할을 할지 모르겠지만, 미카엘이 돌아오기 전과 지금,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캄캄하다. 미카엘이 돌아온 순간 뭔가 사건에 대단한 진전이 있을 것 같았는데, 샌드맨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점점 커진다. 그에 비례하여 병원에 감금된 유레크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진다. 갇혀있던 미카엘이 돌아왔으니 유레크의 심경에 변화가 나타날 거라 믿은 수사팀은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 잠입 수사를 시도한다. 사건의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된다. 유레크가 정말 범인인지, 그가 범인이라면 병원에 감금된 동안 사라진 사람들을 관리했던 건 누구인지, 그도 아니면 범인은 제3의 다른 인물인지, 무엇보다 범인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연쇄살인을 시도한 건지... 밝혀내야 할 게 너무 많다.

 

세상에 없던 사람이라고 여겼던 미카엘의 등장은 가족들뿐만 아니라 형사들, 무엇보다 답보 상태였던 이 사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어떤 위험이 더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이 순간 갑자기 활기를 띤 분위기가 미카엘이 등장하는 소설의 초입부터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형사 유나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라지게 한 인물인 유레크와의 심리 대결이 이 사건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기대하게 한다. 결국, 둘은 승자와 패자로 나뉠 것이기에, 그래야만 끝날 수 있는 일이기에 그 과정이 궁금한 거다. 사실 독자인 나는 형사의 맹활약과 정의가 이긴다는 권선징악을 말하는 소설보다, 악인이지만 몰입하며 읽는 즐거움과 쾌감을 주는 범죄자의 승리에 더 시선이 가곤 한다. 물론 어디까지 소설이기에 가능한 설정이고 바람이다. 현실에서 범죄자가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 그런 섬뜩함은 이야기로 만나는 즐거움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이 소설의 방향을 내내 쫓게 된다.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유나의 고통스러운 싸움이 끝나기는 할 건지 끝까지 지켜보고 싶은 열망이 있어서다. 특히 폐쇄병동이라는 특수성을 얼마나 잘 살려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범죄가 감금된 곳이라지만, 그곳은 또 하나의 범죄의 장이 될 수도 있으니까.

 

폭력을 담은 범죄의 모양만 가득한 게 아니라, 치밀한 두뇌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끈질김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오랜 시간 범죄자를 쫓는 형사와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스럽지 못한 몸으로도 그 범죄행각을 이어가는 범죄자의 대결 구도 역시 볼만하다. 미카엘이 이 소설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하게 하면서 첫 페이지를 열더니, 형사 유나의 고통의 시간을 서술하면서 그가 유레크를 잡아야만 했던 당위성을 들려준다. 여형사 사가의 등장은 수사팀과 유레크 사이에서 줄다리기의 줄을 더욱 팽팽하게 당긴다. '이럴 것이다'라고 예상했던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면서 추리소설의 맛을 깊어지게 만든다. 무엇보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가면서 보게 되는 인간의 모습에서 혼란과 아픔, 상처와 불행의 깊이를 보게 했다.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그 자신의 불행이 포함된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열정을 내보이는 유나의 모습에서 더는 불행이 그의 삶을 잠식하지 않도록 빌면서 읽게 했다. 여형사 사가가 기억하는 고통의 시간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열심히 찾아오곤 하는 불운의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그 누구보다 유레크의 삶의 한 단면에서 시작된 이 어마어마한 범죄의 크기가 그의 인생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었는지 보여줄 때는 아이의 눈에 담은 공포와 절망을 떠올리게 한다. 그저 모두가 순수했던, 계산이 없었던,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였을 뿐인데...

 

"삶은 이미 오래 전에 나를 떠났어. 그러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어떤 고통도… 외로움도, 권태도." (99페이지)

 

모두가 외롭고, 아프고, 상처받고, 견뎌야 했던 시간을 통과하는 것처럼 보였다. 각자 그 시간을 지나고 만나게 될 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게 과거의 고통 가득한 삶은 아니기를 바라게 된다.

 

‘유나 린나 스릴러(Joona Linna Thriller)’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로 읽게 되었는데, 앞의 이야기를 미리 만나지 못해서 좀 서운하다. ^^ 처음부터 유나의 활약을 꾸준히 만났다면 이 소설의 재미를 더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계속될 유나 린나의 이야기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