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다가서는 길... 『글자전쟁』

 

총과 칼을 휘두르며 인간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게 가장 무서운 것으로 생각했다. 오랫동안, 전쟁이란 자연스레 그런 결과를 낫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내가 아주 많이 간과한 게 있더라. 물리적인 힘으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방법의 전쟁은 한 나라의, 한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사라지게 하는 거였다. 자라면서 역사책에서 늘 배워왔던 부분이 기억난다. 일제 침략기 민족말살정책 중 한 가지가 학교에서 우리말 가르치는 것을 폐지하고 일본어를 상용케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일본식 성명 강요까지 있었다. 그만큼 언어가 가진 중요성과 민족을 하나로 만드는 힘, 한 나라의 역사를 그대로 증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몰랐던 것도 아닌데, 이제 와 다시 한 번 섬뜩하게 다가온다. 그때 일본이 우리 민족의 가장 중요한 것을 없애기 위한 정책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광복 70주년인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느 정도나 상상할 수 있을까. 남겨진 역사의 기록으로 배우고 알아야 우리의 현실에서, 무엇보다 진실 된 역사를 봐야 하는 게 중요하다.

 

김진명의 소설 『글자전쟁』은 그와 같은 이유와 의미로 중요한 소설이다. 한자보다는 한글을 익숙하게 사용하는 지금, ‘한자(漢字)’에 숨겨진 우리의 역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돈을 좇아 세상을 사는 무기중개업자 이태민은 천재적인 두뇌로 매번 거래를 성사시키며 부를 쌓는다. 시쳇말로 돈 쓸 시간이 없어서 통장 잔액을 늘리고 있을 뿐이다. 그의 꿈은 500억을 모아 안락한 인생을 사는 거다. 2년 동안 50억을 모았으니 이제 꿈을 이룰 날도 머지않았다. 하지만 인생 그리 순탄하면 재미없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법을 그물에 걸린 그는 중국으로 도피한다.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것. 그곳에서 만난 비밀스러운 남자 '킬리만자로'를 눈여겨보던 중, 갑작스레 킬리만자로가 건넨 USB를 받게 된다. 다음 날 킬리만자로는 시체로 발견된다. 그때 태민은 킬리만자로가 USB를 건네며 '중국의 치명적 약점'이라고 말하던 것을 떠올린다.

 

태민이 USB를 확인했을 때 한 편의 미완성 소설이 담겨있었다. 그 소설이 말하는 게 뭔지 밝혀야만 킬리만자로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다. 단지 한 편의 소설이 아닌,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찾아내고 이해하고 밝혀야 하는 게 도망자 태민의 임무로 자리 잡았다. 돈을 좇아가며 살던 태민이었다. 세상의 우선이 돈이며, 그의 모든 인생 목표가 돈이었다. 그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안중에 없이 살던 그가 자기도 모르게 한 사람의 죽음으로 남겨진 진실을 파게 되는 게 과연 우연일까. 무엇보다 소설을 통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한자에 관한 것이 등장할 줄이야. 한 편의 소설로, 한자는 누가, 어느 나라가 만들었느냐 하는 질문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거다. '아니, 갑자기 왜?' 나도 그랬다. 한자는 당연하게도(?) 중국의 글자라고 생각했으니까. 중학교 때 이후로 한자 수업이 사라져서 좋다고 여길 만큼 어려운 글자였다. 이렇게나 편한 한글을 놔두고, 왜 잘 사용하지도 않는 한자를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곤 했다. 그러니 점수 잘 받기도 힘든 한자 수업이 사라졌다고 했을 때 얼마나 좋아했던가.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나의 어리석음을 바로 질책했다. 한자에 대한 오해와 역사에 무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던 거다.

 

중국에는 ‘답(畓)’이란 글자가 없다고 한다. 소설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는데, 나는 소설이기에 그런 줄 알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N사의 사전을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라고 나온다. 이럴 수가. 중국어를 못하니 이들의 발음확인 과정을 이 소설 속에서 말하는 대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 더욱 궁금해진다. 이 한자를 자전에 따라 발음하니 곧 우리말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무섭고 놀랍다. 진실이 가려진 채로 이어져 오는 역사가 무섭고, 이런 진실을 소설로 만나게 된다는 게 놀랍다. 이렇게라도 알게 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밖에는 할 수 없다. 특히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진실을 향한 발걸음이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작한 이유는 달랐지만, 진실에 다가가려 했던 킬리만자로와 태민의 행동은 다르지 않았으니까. 어느 순간, 이건 찾아내어 밝혀야만 하는 일임을 자각함으로써 같은 의미를 품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게 된다. 붓 한 자루의 힘이 천만 자루의 창검보다 강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한 나라의 언어가, 글자가, 최첨단 신종 무기보다 더한 힘을 가진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 그러니 이들이 걸어가는 과정은 글자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이상의 깊은 역사와 뿌리를 찾아 제자리에 놓는 일이었다.

 

문자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운 소설이다. 동시에 소설을 소설로만 읽을 수 없게 한다. '허구를 동원하지만 단순한 사실의 나열로는 밝힐 수 없는 수면 아래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라고 말하는 게 뭔지 그대로 전해온다. 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소설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한자가 한국인의 문자라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는 모습이 가끔 위태로워 보였지만, 더할 수 없는 흥분이 진실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곤 했다. 그 흥분과 위태로움으로 진실을 향해 발돋움하게 한다. 우리의 뿌리인 동이(東夷), 한자(漢字)의 기원인 갑골문자가 은(殷)나라 때의 것이며, 은이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니, 한자는 우리 글자라는 것을 어떻게 찾아내어 보여주는지 숨도 못 쉬고 읽게 한다. 돈을 좇던 사람이 한 나라의 국민으로, 한 사람의 인생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며 찾아낼 최후의 진실을 떠올리고 있자면,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동안 김진명이 독자에게 선사했던 소설들의 의미가 식지 않은 거다. 우리가 알아야 할, 찾아내야 할 역사의 진실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