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새의 울음이 멈추지는 않아요... 『버드 박스』
분명, 나를 둘러싸고 있는 뭔가가 있다. 그것도 내 곁에 아주 가까이 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나의 숨통을 죄어오는 게 저기 있는데, 나는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없다. 사람인지 동물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이유로 그러하는지, 언제까지 그럴는지, 끝이 있기는 하는 건지... 그래서 답답하다. 두렵다. 고통스럽고 괴롭다. 이런 공포가 끝나는 순간이 오긴 올까?
4년 전 어느 날, 러시아에서 시작된 원인을 알 수 없는 치명적인 사건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보고 난 후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살인을 한다. 그러고 나서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런 일이 연이어 발생하고, 곧 전 세계로 퍼지게 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공격당하듯 정신을 망가뜨리는 기이한 현상의 원인을 찾을 수도 없다. 괴담이 퍼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집 안에서 숨어 지낸다.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빛,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차단한 채 암흑의 세계를 경험한다. 밖으로 나가지 말 것, 나가더라도 절대 눈을 뜨지 말 것. '그것'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사람들의 느닷없이 시작된 광기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건가? 분명히 보았다는 그 '뭔가'의 실체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있던가?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믿고 싶은데 완전하게 믿을 것은 없고, 무시하자니 생명의 위협은 너무 가까이에 있다. 명확한 근거로 확인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다. 목숨을 두고 도박하기에는 두려움이 크다. 담요나 판자로 집안의 온갖 창문을 막고, 밖으로 걸음 할 일 있으면 눈을 감거나 안대를 하고 나가야만 했다. 그 안에 존재하는 맬로리. 임신한 채로 안전가옥을 찾아간다. 자신보다 먼저 그 집에 자리한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이어간다. '그것'으로부터 피신해 아직은 남아있는 생존자들. 이십 대 초반의 맬로리는 자신과 배 속의 아이를 위해서 강해져야만 했다.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렇게 버티고 4년 후, 맬로리는 눈을 감은 채, 두 아이의 눈을 안대로 가린 채로 안전가옥을 떠난다. 더 안전한 '어떤 곳'을 찾아서...
맬로리가 두 아이를 데리고 그 '어떤 곳'을 찾아갔는지 어땠는지, 궁금할 거다. 나 역시도 그랬다. 맬로리가 안전가옥을 버리고 밖으로 나와야만 했던 이유가 처음부터 설명되지 않았기에 그 궁금증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 상황의 시작부터 그 과정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이런 재앙은 왜 시작되었는지, 그에 인간은 어떤 대처로 삶을 영위해 나갔는지, 무엇을 목표로 그 버팀을 계속하는지 알아야만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언젠가 우리에게 닥칠(어쩌면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공포가 그려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그게 지금일 수도, 몇 년 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은 이럴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때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운전대를 틀고 나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맞이하게 될 극한의 공포 속에서 나는 어떤 제스처를 취하고, 어떤 다짐으로 도전 같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면?' 하는 의문을 버릴 수가 없게 했다. 이들의 공포와 두려움이, 그런데도 살아남아야 하는 의지가 그대로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멈추지 않는다. 언젠가 '그것'의 실체를 마주하여 정면으로 '보고' 무너뜨리고 싶은 갈망도 존재한다.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 상대도 모른 채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니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반드시 살아남는 것이다. 그런 의지가 한 번씩 솟아날 때마다, 그들과 함께 밖의 빛을 차단한 채로 살아가는 나를 그려보곤 했다. 폐쇄된 곳으로 향해야만 하는 선택은 인정하게 된다. 죽지 않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서 때로는 현관문을 열어야만 하는 도전이 필요함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잘 상상이 되지 않으면서도, 그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게 인류의 종말이라면, 이 종말의 순간을 내가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좀 더, 조금만 더 버티고 걸어서 그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만들고 싶은 생기는 게 이상할 리 없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어.
이 소설이 독자에게 주는 치명적인 매력이 바로 그 공포의 근원이자 그 공포를 대하는 태도였다. 호흡을 멎게 하는 긴장감과 공포가 계속되는데도 시작의 원인도 끝의 시점도 알 수 없기에, 내 눈으로 기어코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만나게 하기 때문이다. 4년 전과 지금의 시간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이들이 어떤 시간을 거쳐 왔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심리와 타인을 향한 태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이기심을 드러낸다. 그 모든 것에 무조건 반박할 수도 없게 한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그런 모습을 아주 모른다고 할 수 없으니까. 거기에 모성이 버티게 하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증명하면서, 인간 자체가 가지는 삶의 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동시에 인간에게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게 뭔지 그대로, 직선으로 가슴에 꽂히게 한 소설이기도 하다. 순간적으로, 개리의 말처럼 '인간이 두려워하는 크리처의 실체는 바로 인간 자신'일까 하는 생각도 하곤 했다. 아무것도 증명된 게 없지만, '그것'에 대해 상당히 많은 생각과 의문을 갖게 하면서, 멈추지 않는 불안의 시간이 어떤 모양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떠올려본다. 그 불안을 내가 붙잡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평범하게 살아왔던 일상으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된 삶은 전쟁 같았다. 지옥 같았다. 내 앞에 언제 어느 때 이런 순간이 던져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멈출 수 없게 했다. 세상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도, 확신 없는 미래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이 내 안을 잠식해가고 있더라도, 배의 노를 젓게 하는 건 희망이라는 것을 전달하는 소설이다. 비록 그 희망이 안갯속에 가려져 희미하게 보이더라도 말이다.
검은숨,
버드박스,
종말소설,
절대눈뜨지마,
공포소설
같은책 다른리뷰 | 이 책에 대한 다른 리뷰도 읽어보세요.
버드 박스
이전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