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의 연대기... 『시작하는 연인들은 투케로 간다』

 

 

한 번 살면서 얼마만큼의, 어떤 사랑을 하다가 죽게 되는지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언젠가 죽음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자기가 그동안 해온 사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마지막으로 심어놓을 수 있게 될까 싶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사랑을 완전하게 만드는지 궁금했다. 지금껏 살아와 보니,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잘 알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던지라, 어김없이 잘 알지 못할 것 같은 '사랑'도 궁금한 거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해왔던 게 맞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어서.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잘 하고 싶어서...

 

사랑을 모를 때 만난 사람과의 시간으로 십 대 소년의 죽을 것처럼 아픈 마음, 살면서 지지리도 남자 운이 없었다고 말하는 여자의 사랑 달관, 단조로운 삶을 벗어나고자 일탈처럼 낯선 남자와의 하룻밤을 꿈꾸는 중년 여인의 새로운 시작, 투케 해변으로 떠밀려온 노인이 선택한 영원한 사랑까지. 그레구아르 들라쿠르는 이 소설로, 마치 '이런 사랑이 있는데, 너희는 해본 적 있니?'라고 묻는 듯했다. 내가 소년의 나이였을 때, 사랑에 실패하고 남자 운이 없다고 말하던 여자였을 때 어땠는지 시간의 기억을 더듬어보게 했다. 노년의 죽음을 선택하는 기준이 사랑이 될지도 모를 먼 훗날 언젠가의 시간을 그려보게도 했다. 비슷하기도 했고 다르기도 했지만, 어떤 식으로 생각해도 결론은 한 가지로 귀결되곤 했다. 사랑의 정의가,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사랑이 품은 힘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 사랑은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하고 굉장한 의미를 품고 있다는 거다. 연대기적 구성으로, 연작소설로 풀어낸 소설 『시작하는 연인들은 투케로 간다』는 그런 사랑에 대해 다양한 시선의 정의와 추억을 말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뒤엉킨 손가락들이 우리의 살갗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의 지나간 추억과 두려움을 다시 끄집어냈다. 우리 두 사람의 놀라운 재회를 써내려갔다. (81페이지)

 

한 사람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도 하고, 없던 의지도 만들어내는 괴력을 가진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사랑'이라는 하나의 감정을 넘어서서 인생의 큰 그림 속의 한 장면을 진하게 색칠하게 하는 거다. 그 그림이 훗날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는 몰라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왜 자신을 떠났는지 모를 소년에게는 소녀를 향한 기다림과 도전의 의지를 세우게 한다. 내 마음이 전해지겠지, 그럼 언젠가 나를 다시 봐주겠지, 서툴고 뭘 잘 모르는 사랑이었지만 이루어지겠지, 하는 간절함을 담은 도전을 만든다. 매번 자신이 선택한 남자를 사랑이라고 믿었던 여자에게는, 그게 사랑이 아님을 확인할 때마다 조금씩 단단해지는 심장을 만든다. 지독하게 남자 운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인생의 이성적 판단을 키워준다. 남자가 아니어도 사랑은 존재하며,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많다. 삶의 무료함을 느낀 중년의 여자는 또 어떤가. 그녀의 이름이 모니크에서 루이즈로 바뀐 순간 25년의 세월이 쌓은 신뢰는 새로운 사랑, 삶으로 나타난다. 낯선 남자와의 하룻밤을 꿈꾸는 게 그녀 인생에 어떤 전환점을 가져왔는지 보게 한다. 루이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중년의 위기를 겪는 부부가 이런 이벤트(?) 같은 휴가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이런 도발이 의사의 처방보다 나은 약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했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빛났던 건 묘비명 '로즈'라 불리던 노인의 사랑이다. 50년 넘게 매일 보는 사이라고 말하는 애틋한 표정이 모두 말하고 있었다. 손을 잡고 해변을 거니는 모습이 부러운 노부부의 풍경이다. 사랑이라고 부르며, 마치 평생 모든 것을 다 내어줄 것처럼, 서로 함께할 인생을 꿈꾸며 상대의 손을 잡고 결혼을 했어도 죽는 순간까지 그 관계를 유지하지는 쉽지 않다. 상대를 잃었던 순간의 고통을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며 그 손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꿈을 꾼다. 이 부부처럼 늙어가고 싶다고, 바로 옆에서 어루만지면서 서슴없이 사랑의 표정을 짓고 싶다고, 한날한시에 죽고 싶을 만큼 사랑한다고... 저자가 이 꿈을 이루어주겠다는 것처럼 소설로 답하는 것 같았다. 다양한 사랑 속에서 결국 이런 사랑도 만나게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꿈이되, 꿈으로만 머물지 않을지도 모르니 그곳, 투케로 한 번 와보지 않겠느냐고.

 

죽을 만큼 열렬한 사랑을 꿈꾸는 일을 접었다 -결국 내 일상을 사랑하고, 언젠가 한 남자와 함께 사는 모습을 약속해 줄 수 있는 인생을 즐기기 시작했다-. 어쨌든 고독은 분명 아름다움의 산물은 아니니까. (102페이지)

 

여름날의 해변, 각자의 추억 하나씩 저장해두었던 투케, 시작일지 끝일지 모르지만 뭔가를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마음으로 걸음하고 싶은 곳. 그곳이 비단 투케뿐이겠냐마는, 어떤 장소로 이런 사연들을 풀어내기 위해 찾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을까. 사랑을 포기하고 살기에 우리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사랑을 미루고 살기에 우리의 가슴은 지금 너무 뜨겁기에. 저자는 네 커플의 사랑 행보를 통해, 사랑한 만큼 더 열정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살아가면서, 시간이 흘러 우리 인생을 되돌아보면서도 삶의 불안함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 불안함을 잠재우는 것 역시 사랑이라고 여겨도 좋다고. 그 어떤 사랑도 완전할 수 없고 죽음을 막지도 못하지만,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게 오직 사랑뿐이라는 것처럼 들린다. 사람이 하나의 인생을 살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는 게 사랑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바뀌는 감정 역시 사랑의 한 형태임을 인정하게 한다. 있는 그대로, 불안함마저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사랑임을 보여준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꽃과 꽃말까지 이야기에 곁들여져 이들의 감정의 흐름을 아름답게 그린다. 우리(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루어낸 사랑을 보고, 듣고, 공감하는 것뿐이다. 우리 사랑의 연대기를 따라가면서...

 

푸른 해변을 연상하게 하는 표지, 그 해변에서 삶의 다양한 감정을 풀어놓고, 그게 어떤 모습이든 사랑이라고 말하는, 뜨거운 가슴을 내려놓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열대야로 잠 못 드는 여름밤에 제법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