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현재와 미래를 향한 복종. 『복종』

 

 

인간은 실은 자신의 죽음 자체에는 거의 무관심하다. 인간의 유일하고 실제적인 관심사, 그들의 진짜 근심은 바로 가능한 한 육체적 고통을 피하는 것이다. (341페이지)

 

앞으로 몇 년 후, 2022년의 프랑스를 무대로 펼쳐지는 변화한 세계사의 모습을 그려보게 하는 소설이다. 물론 지금은 2015년이니 소설 속 약 7년 후의 이 모습은 상상이다. ‘이런 세상의 모습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어떤 가능성을 드러내면서 말이다. 당황스러웠지만 몇 년 후의 세상이 그러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냐는 긍정의 끄덕임을 불러왔다.

 

40대의 독신자 프랑수아는 소르본 대학의 교수다. 가끔 우울하고, 외롭지만 뭐, 괜찮다. 가르치는 학생과 연애도 하는 즐거운 인생의 시간도 있으니까.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 그는 변화를 감지한다. 프랑수아 자신의 변화라기보다는 프랑스 사회의 변화인 거다. (국가의 변화와 개인의 변화를 완전히 따러 놓고 볼 수는 없지만)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과 이슬람 정당인 이슬람박애당 대표가 결선투표에 진출하게 되고, 극우 정권에 위기감을 느낀 좌파와 우파 정당들이 이슬람박애당과 연합한다. 이렇게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 프랑스 사회에 예정하지 않은 변화가 하나씩 일어난다. 정교분리 원칙이 사라지고, 그가 몸담은 대학마저 이슬람 학교로 바뀐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고 여학생들은 베일을 쓰고 돌아다닌다. 여성이 사회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수아 역시 학교에 계속 남아있으려면 이슬람으로 개종해야 하는 문제를 풀어야만 한다.

 

무슬림이 잠식하는 프랑스의 모습을 그리면서 읽게 되는, 이게 과연 2022년의 이야기일까? 사실, 어느 정도 읽을 때까지 이 소설이 말하는 시간이 미래시점인 줄 몰랐다. 그게 중요해 보이지도 않았다. 소설이니까,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고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 찾아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읽고 있었는데, 몇 년 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몇 년 후가 아니라 지금 일어났다고 해도 그다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지금과 무엇이 다른지 찾아내기 어려웠다. 익숙하게 들어온 이슬람 국가의 이름에 혹시 프랑스가 추가되려나? 이런 설정이 상상에서 머물지 눈앞의 현실이 될지 아직은 모른다. 지금은 2015년이고, 갑자기 하나의 종교로 강요성을 가질 거라는 생각이 쉽게 들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꾸만 '어쩌면?' 이라는 가능성을 떠올리게 된다. 세상의 변화는 늘 있었고, 한 나라의 정권을 쥔 정당이 뿜어내는 힘을 그대로 보게 되는 것뿐인 거 아닌가? 그게 종교의 강제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혼란한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매 순간이다. 세상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그대로 안고 살아간다. 무슬림이 프랑스의 많은 부분을 잠식한다는 이 소설이, 상상이되 상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기독교와 무슬림이 오래전부터 숱한 전쟁을 벌여온 것은 사실입니다. 싸움질은 예로부터 인간의 주요 활동이었고 전쟁은 나폴레옹의 말마따나 인간의 ‘본성’이죠. 하지만 제 생각에 이제는 이슬람과 타협하고 동맹을 맺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179페이지)

 

종교적인 문제, 다른 문화의 침입이 어떻게 보일지 몰라서 불편한 마음이 먼저 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큰 그림이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변화한 세상 속에서 외롭게 서 있는 듯한 주인공 프랑수아가 더 크게 보였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 학교,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들. (프랑수아가 세상을 보는 시선의 변화가 개인의 변화만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 사람들과 환경들로 그가 변해가는 모습에 집중하게 된다. 한 개인의 변화를 중심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주인공 프랑수아의 고민을 보고 있자면,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들이 혼란을 불러온다. 결과적으로 보면, 한 인간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게 이 소설이 보여주는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되니까. 처음부터 그래 왔듯이, 현재 삶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러낸다. 자신의 안위를 염려한 나머지 자신이 살아가는 즐거움과 편함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의 소설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의 변화를 만드는 건, 크게는 국가 정권의 변화와 그 정권이 휘두르는 힘일 수도 있다. 하지만 프랑수아가 한 선택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이었던 건 변함없다.

 

프랑수아가 총장의 말에 빠져들게 되면서 그의 머릿속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게 되는 순간이 가장 기억난다.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전문가인 프랑수아가 계속 좇고자 했던 위스망스의 삶의 흔적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처럼, 결국엔 위스망스의 선택과 비슷해진 것처럼... 세상에, 권력에, 자신의 안위에 복종하게 되는 인간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만 같다. 문득 이런 상상도 하게 된다. 거기 프랑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2022년을 잠식한 무슬림의 세상'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문화를 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들이 켜켜이 쌓인 문제들을 해결해줄 방법을 들고 찾아와 국가의 안정을 이뤄냈다고 해서, 그게 내 육체의 안위를 보장한다고 해도, 그 불편한 시선을 쉽게 거둬들일 수 있을까...

 

시종일관 '만약에'라는 단어를 지우지 못하고 읽게 했다. 이슬람 문화를 다 받아들일 수 없는 불편한 시선도 느낄 수가 있었다. 특히 새로운 총장과의 대화, 예전 동료가 '결혼할 아내를 중매쟁이가 구해줬다'고 말하는 부분들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시선을 담았다. 테러에 대한 두려움 역시도 존재했다. 소설 자체가 흥미로워서 읽는 재미도 있었지만, 많은 고민과 생각 거리를 남겨두었기에 무겁기도 했다. 한 사회를 잠식해가는 힘에게, 신에게, 성에게, 운명에게, 또한 변화에 복종하는, 복종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솔직하고 나약해지는 인간을 보게 한다. 그 바탕에는 삶에 대한 불안함이 존재한다. 불안한 현재를 보게 하면서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모를 미래를 그대로 보게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