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영혼을 살찌우기 위한 프로젝트. 『신드롬 E』

 

인체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눈(eye)에 대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영상미디어를 접할 수 있는 오늘의 현실을 생각하게 했던 소설 『신드롬 E』. 물론 이 소설은 '눈'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정신을 주관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선사한다. 이미 살아오면서 경험한 많은 것을 비추어 보면 모를 것도 아닌데, 두 주인공 프로파일러 샤르코와 여형사 뤼시가 추적하는 그 걸음을 같이 따라가면서 더 확신하게 된다. 인간의 뇌를 통해 보는 것이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조종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누군가는 얻고자 하는 것을 취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단순히 눈이 카메라의 뷰파인더와 같은 거로 생각했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게 다르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뭐랄까, 보고 기록으로 남기며 찍고 끝나는 게 아니라, 눈을 통해 바라본 모든 것이 머릿속으로 들어가 신체의 또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하여준다는 것. 잔인하지만, 한 번쯤은 그 잔인함의 배경과 원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각막을 저미는 메스의 일격, 눈꺼풀의 깜박임……. 뤼시는 푸아녜가 지적한 사실 또한 상기해보았다. ‘눈은 그 자체로 이미지를 포착하는 한낱 스퍼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211페이지)

 

시력을 잃을 만큼 이상한 영화. 그 이상한 사건의 시작은 오래된 영화 필름을 판다는 광고였다. 한 남자가 그 광고를 보고 달려가 1950년대 단편 무성영화를 구매했고, 그 영화를 보다가 실명했다. 왜? 그걸 파헤치기 위해 그 남자의 옛 연인이자 형사 뤼시는 여름 휴가를 잊는다. 사건을 추적하다 보니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닌 듯하다. 영화를 분석한 복원사의 언급으로는 서브리미널(인간이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메시지를 삽입해 잠재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기법) 영상이 숨겨져 있고, 그 외에도 끔찍한 비밀이 있는 필름이라는 것. 같은 시각, 신원을 알 수 없는 다섯 구의 시신이 발견되는데, 양손이 잘리고 눈과 치아는 뽑혀있고 두개골은 잘려 뇌가 사라진 채로 지하에 파묻혀 있었다. 프로파일러 샤르코는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호출된다.

영화를 보다가 눈이 먼 사람, 영화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영상으로 인해 계속되는 죽음. 도대체 그 영화가 가진 위험이 뭐기에 그 영화에 관심 두거나 추적하려는 사람들이 자꾸 죽어 나가는 건지... 반면 신원을 알 수 없는, 눈과 뇌가 사라진 시체들은 또 뭐란 말인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잔인한 짓을 행하고 매장했던 것인가? 두 형사가 찾아 나선 그 비밀을 알아가는 순간, 우리는 절대 악의 존재를 알게 된다. 아주, 잔인한.

 

서로 다른 두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기에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전혀 다른 사건이었으므로. 하지만 우연처럼, 운명처럼,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이유를 갖고 두 사건은 서로 맞물려 있다. 영화와 의학. 어린이와 토끼. 살인과 광기. 잔인했다. 열두 명의 소녀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것을 알았을 때, 이건 분명 대학살 수준의 살육의 현장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 잔인한 장면을 무성영화로 촬영까지 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촬영을 했다는 건, 누군가가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또 따른 해석으로 보자면 그걸 보여주고 싶은 대상이 있다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이 영상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건 또 뭐란 말인가.

 

그 해결의 지점, 그들의 미치광이 짓을 풀 수 있는 두 사람이 이 사건들의 흔적을 밟는다. 샤르코와 뤼시 형사가 목숨을 걸고 파헤치는 이 살육의 공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제와 다시 드러난 그 영상의 흔적을 따라 살인이 계속 일어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들이 그 영상의 노출을 그렇게 막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눈부시게 발전한, 여전히 발전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신경과학이 폭력과 악의 근원을 계속해서 품고 나아갈 수 있기에 그 노력과 비밀을 유지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의학과 과학을 발달은 인간의 삶을 좀 더 풍요롭고 편리하게 만드는 장점을 가지면서 악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농후하기 때문이다. 흔한 예로, (내가 과학에 대해 세세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첨단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삶 곳곳에서 편리함을 주는 것과 동시에 계속 발전된 무기를 생산해내기도 하니까. 악의 권력을 가진 이들이 죽은 자들의 눈을 도려내고, 뇌를 꺼내 연구하면서 찾아내고 싶은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악한 영혼을 살찌우기 위해서…….”

쥐디트는 긴 침묵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카메라를 통해서 사악한 영혼에 권력과 섹스와 죽음의 숨결을 부여하는 거죠. 자크는 단지 영상을 통해서 도발을 하거나 충격을 주려고 했던 게 아니에요. 그게 그 사람 작품의 목적이죠. 아마도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가 그토록 포르노그래피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한 남자가 포르노 영화를 보게 된다면 자연스레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그녀는 정확하게 손동작을 취했다.

“영상은 충동에, 리비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지요. 영상은 그 사람 안으로 침투해 그에게 행동하라고 말해요. 자 이게 바로 자크가 궁극적으로 열망하던 거예요. 그곳에서자크는 영상의 영향력을 암시할 때면, 늘 그것의 역할에 대해 말하곤 했죠.”

“그것이라면?”

“신드롬 E. 네, 맞아요. 신드롬 E." (342페이지)

 

그들이 만든 폭력적인 영상, 그 영상을 보는 이들의 눈을 통해 들어와 그것의 폭력성이 뇌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 즉 정신 전염을 확인하고 이용하고자 했던 이들이 진행했던 '신드롬 E'가 서서히 그 정체를 밝히면서 50여 년 전의 사건과 비밀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비밀이 드러날수록 더욱 감추고 싶은, 정체를 숨긴 이들과의 두뇌 싸움이 이 소설의 흐름을 더욱 팽팽하게 당긴다. 결국 인간의 눈은 직접 작용하는 게 아니라 뇌와 결합되어 움직이는 신체의 일부이며, 그 눈과 뇌의 비치는 영상이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보다 부정적으로, 악으로, 폭력적으로 작용할 때 그 영향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은 대로 판단하자면 이런 작용을 확인하는 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서 더 강조하고 싶은 게 아닐까 추측하게 하는 소설이다. 악이 발휘하는 힘, 그 악이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수록 그 힘은 커진다는 것. 어느 순간 인간의 손을 떠나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괴력을 발휘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게 한 소설이다.

 

처음 따로 시작됐던 두 사건이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고, 또 두 사건이 어떻게 맞물려 풀어가게 될지 지켜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세계 곳곳의 장면을 들려준다. 벨기에, 프랑스, 이집트 등등 사건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들의 활약이 영상으로 그려져 더 흥미로웠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중에 있다니 당연한 순서 같다. 이 소설 읽다보면 저절로 영화와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니까. ^^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방대한 자료준비를 했다는 저자의 후일담에 저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게, 신경과학 분야와 전 세계에서 일어난 내전이나 집단 학살, 정보기관의 활동을 소설의 구석구석에 배치해놓았던 것이다. 잔인하지만 더욱 집중해서 읽어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 모든 면에서 피해갈 수 없는 미디어의 모든 요소들이 얽혀 긍정적인 면과 잔인한 면을 동시에 설명하고 있다. 독자로서는 행운이다. 소설을 만나 찾고 싶은, 읽는 재미를 선사하니까 말이다.

 

‘샤르코 & 엔벨 시리즈’ 3부작 중 첫 권인 『신드롬 E』는 흥미진진한 속도감으로 읽히는 의학 스릴러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으면 알게 되는 것은, 이 이야기는, 샤르코와 엔벨 형사 콤비의 활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기다려진다. 작가의 전작 『현기증』을 읽다가 끝까지 다 읽지 못했는데, 다시 펼쳐봐야겠다. 내가 뭔가를 놓쳐서 전작을 불편해했던 건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