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상상해 보자.
그는 상대방이 태어날 때부터 성장한 지금까지에 대해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고,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며,
사랑의 크기가 너무도 커서 상대를 위해 일생을 헌실할 각오가 되어 있고,
항상 존경하고 아끼고 감탄하고 그리워하고 동경한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는 그토록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감동해 한 번도 운 적이 없다면,
또한 그가 ’우는 행동’을 부끄러워하거나 경멸한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믿을 수 있을까?
그 사랑의 진실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림과 눈물’은 이런 의문점에서 출발한다.
미술사학자를 비롯해 무수히 그림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그림 앞에서 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심지어 ’우는 행위’를 무척이나 경멸하고 경계한다는 사실에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림 앞에서 울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림 앞에서 우는 행위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메마른 감성이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너무도 많은 그림에 대한 지식, 그림 역사에 관한 지식, 화가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가슴으로 그림을 감상하는데 걸림돌이 되며,
이미 이성의 갑옷으로 무장한 우리의 마음은
결코 눈물이 흐를 정도로 격한 감정의 파고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반문한다.
[그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결코 한 점의 그림과도 사랑에 빠져본 일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 
명백히 뭔가를 표현하고 있는 대상들을 평생 보며 지내면서도, 
단 한 번도 실제로 눈물 한방울 흘릴만큼 감동한 적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 없는 삶이 살아가기 더 쉽다는 것만은 안다.]

사람을 쓰러뜨리기도 하고,
사람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폭풍처럼 쓸어버리기도 하고,
사람을 고요와 평화의 절대공간으로 안내하기도 하는 그림.

이성적인 학자들은 그 모든 것들이 감상자들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변덕스러운 성격에 의한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한단다.
그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거나 
그런 경험이 하찮게 평가될 수는 없다는 저자의 주장에 나도 동의한다.
그들은 그림 앞에 놓인 무수한 정보와 지식과 편견과 명성을 뚫고,
온전히 그림 그 자체와 사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성과 냉정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결코 그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할 파라다이스를 경험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림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들이 몹시 부럽기만 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