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만한 영화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평점을 자주 살펴보는데, 주로 낮은 별점을 준 사람들의 평을 꼼꼼히 읽는 편이다. 개봉 초기의 별 5개짜리 평점은 너무 노골적으로 알바들을 동원해서 조작한 티가 나기 때문이다. 물론 막연히 '돈이 아까웠다, 푹 자다 왔다, 원래 이런 글 남기는 사람이 아닌데 성질나서 로그인했다'라는 식의 감정적인 별 0개는 '나만 죽을 수 없다'는 별 5개 만큼이나 믿을 만한 정보가 못 된다. 영화평  뿐만 아니라 상품의 사용 후기를 읽을 때도 문제점은 없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좋은 평가를 명목으로 대가를 요구하는 파워블로거들도 일부 있다고 하니 나 같은 부정적인 시각이 일반적일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잘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애초에 내가 위험부담을 덜 수 있는 것도 전부 얼리 어덥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아무런 평가가 없었을 때, 또는 (업체에서 무료로 제공받은 대가로 쓰여진) 좋은 평가만 보고 직접 구매해서 사용해 본 뒤 날카로운 지적을 남긴 덕분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구자적 모험 정신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도전이다.

 

버디 무비에선 충동적으로 저지르고 보는 캐릭터와 신중하게 수습하는 캐릭터가 콤비를 이뤄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했던 사건을 처리하기도 한다. 개미와 베짱이, 토끼와 거북이처럼 서로 상반된 성향을 가지고 상대방을 때로는 한심하게, 때로는 부럽게 바라보며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최선의 조합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물과 불처럼 충돌을 일으키기 쉽다. 맡은 일은 책임감을 가지고 완수하는 편이어서 성실하다는 평가는 받지만, 나름의 완벽주의 때문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부분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다보니 일처리는 더디고 신경은 날카로워지는 나. 구체적인 계획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소심함에 나 스스로도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아서 가끔은 일단 저지르고 보는 유형의 사람들이 부럽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무대포 정신이 못마땅해지고, 무모함과 용감함의 차이조차 애매해지면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런데 긍정과 도전을 말하는 자기계발서들은 나보다 그들에게 꽤나 유리해 보인다. 읽고 나서 잠시 동안은 적극적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지만, 곧 뭔지 모를 위화감과 석연찮음을 느끼는 나로서는 변화가 두렵기만 했다.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의욕을 끌어낼 것인가>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처럼 손실에 민감하고, 늘 일이 잘못될 가능성에 염두를 두며, 이미 가진 것을 지키려는 성향을 '안정지향 성향', 반대로 이득에 민감하고, 늘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더 많은 걸 얻으려는 성향을 '성취지향 성향'이라고 한다. 안정지향 성향은 비판이나 실패를 두려워해 차라리 가만히 있는 쪽을, 성취지향 성향은 성공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는 쪽을 선택한다. 안정지향 성향은 까다롭고 꼼꼼해서 세밀하게 부분을 보고, 성취지향 성향은 걱정없는 천하태평으로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본다. 안정지향 성향은 중박으로 만족하지만, 성취지향 성향은 창의적이면서 실행력은 부족해 대박 아니면 쪽박이기 십상이다. 이 책은 양육방법, 남녀관계, 구매 결정, 정치 성향, 직업, 스포츠 등에서 두 성향을 상황별로 대비시켜가며 거의 반반의 비율로 풀어나가고 있지만, 안정지향 성향의 사람들이 답답해했던 부분을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데 더 큰 역할을 해준다. 무조건적인 긍정은 안정지향 성향에겐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두 가지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양육방식에 따라 대개 한쪽이 우세하게 나타난다. 성공하면 칭찬하고 실패하면 관심을 갖지 않는 양육방식은 아이를 성취지향 성향으로 만드는데, 예상한 것처럼 칭찬이나 보너스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엔 성과가 높아지고, 약간의 위협이나 벌금처럼 부정적인 피드백엔 성과가 낮아지게 만든다. 안정지향 성향은 부모의 기대치가 높아서 성공은 당연하게 여기고 실패하면 엄격하게 벌을 줄 때 우세해지는데, 긍정적인 피드백은 성과에 별 영향을 안 주지만 부정적인 피드백을 줄 때 성과가 높아지는 특이한 양상을 보인다. 칭찬과 보너스가 모두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효율적으로 일하게 만들려면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가며 쓸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4달러의 보상을 먼저 주고 잘하면 1달러를 더 주는 것'과 '5달러의 보상을 먼저 주고 못하면 1달러를 빼앗는 것', 축구 패널티킥에서 '다섯 번 중 세 번은 성공하라'와 '다섯 번 중 두 번 실패 하지 마라'는 조삼모사처럼 결과는 똑같지만 프레임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성취지향과 안정지향 성향의 성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성향에 적합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소통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해고 통지처럼 불편한 대화를 나눠야 할 때 성향을 고려하면 상대방이 좀 더 공정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어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다. 남녀관계 문제도 자세하게 다뤄서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성향이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복권을 살 때는 성취지향이 됐다가 보험가입이나 예방주사를 맞을 때는 안정지향이 될 수도 있다. 투표처럼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갖는 일들을 알아보는 것도 이 책의 흥미로운 부분이다. 안정지향 성향도 수습 불가능한 상황에 닥쳤을 때는 가지고 있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무모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실수나 손실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성취지향 성향을 가지면 도움이 된다. 새로운 목표를 시작할 때는 열의가 필요하니 성취지향 성향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데는 경계심이 필요하니 안정지향 성향을 갖는 게 좋다. 이렇게 자신의 성향을 상황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는데, 희망과 포부에 대해 글쓰기를 시키면 성취지향 성향이 높아지고, 의무와 책임에 대해 쓰면 안정지향 성향이 높아진다고 한다.

p.182-어느 한쪽 성향이 강한 사람과 가까운 사이인 경우, 그 사람을 그냥 떠올리기만 해도 그와 같은 성향으로 바뀐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만약 그 유형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 인물을 떠올려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긍정이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고 있는 시대다. 하지만 긍정 알레르기 부작용이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새로운 접근법이 체질에 맞는 의욕 향상법을 찾게 도와줄 거다. 안정지향 성향에 맞게 손실 프레임으로 바꿔서 표현하자면, 체질에 맞지 않는언어와 피드백은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성향에 대한 이해 없이는 상황에 맞춰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안 읽으면 손해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