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로 책을 자주 받게 되는데, 택배 기사 분들은 보통 열린 문틈으로 책을 밀어 넣다시피 해서 고맙다는 말을 해도 별다른 반응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다. 반면 우체부 아저씨는 책이 자주 오는 것 같다며  빨리 읽을 수 있게 일부러 일찍 갖다 주는 거라는 농담도 곧잘 한다. 그런데 무뚝뚝한 택배 기사분과 친절하고 넉살 좋은 우체부 아저씨 둘 중 어느 쪽이 더 편하냐 하면 예상 외로 택배 기사분이다. 가끔 후줄근한 차림으로 택배를 받을 때는 차라리 모르는 척해 주는 게 괜히 말을 걸어 오는 것보다 덜 창피하기 때문이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안 보면 그만이니까 덜 신경 쓰이지만, 노래 가사처럼 '아는 사이인듯, 아는 사이 아닌, 아는 사이 같은' 애매한 관계가 되면 불편해진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나에 대한 데이터가 임시 파일이 아닌 별도의 폴더에 저장된다는 건 은연중에 내가 평가받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보다 두 번 이상 보는 사람이 더 어렵다.

'소심함', '수줍음'이라는 말보다 '내성적'이라는 표현으로 나를 정의했던 데에는 조금이라도 덜 약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반영됐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에게나 어울리는 말보다는 고상해 보이는 표현이다. 이렇게 내 머릿속에서만 사용할 단어인데도 남들이 어떻게 볼지를 먼저 따지는 걸 보면 지나치게 병적으로 남을 의식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자체 내장 CCTV 덕분에 어디 가서 나쁜 짓 안 하고 다니는 건 다행이지만.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다. 능력있어 보이고 싶고,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으로 평가 받고 싶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잠시 마음은 불편하겠지만 일상 생활에서의 그런 평가는 가볍게 별 다섯 개 만점의 한줄 평 정도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매 순간마다 자신을 오디션 무대 위에 올리고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도를 넘어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면 불편함을 넘어 공포가 될 수도 있다. 이른바 사회 공포증이다. 문제는 심사위원과 판사가 누구냐이다. 내가 보기에도 나 자신이 부족한데 남들 눈에는 오죽할까 하고 상대방의 평가를 내멋대로 추측하기 시작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뻔하다.

요즘 세상은 남의 일에 무관심하다고들 생각한다. 결혼식장에서도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장면을 보여준 공익광고는 소통의 부재를 꼬집는다. 하지만 그마저도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처럼 마주치는 사람 모두를 전세계의 시청자 대하듯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과대평가 하며 스트레스를 감당 못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예민함에 답답해 하며 그들의 고통을 과소평가 하기 쉽다. 물건을 살 때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나, 모임에 나갈 때처럼 지극히 평범한 상황에서도 벌거벗은 상태의 수치심을 느낀다고 보면 그 심정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거다.

 

학생 때 칠판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교과서를 읽어야 했을 때 심장이 요동치고, 숨이 막히고, 진땀을 흘리고, 말을 버벅거렸던 기억이 있다. 누구나 남들 앞에 서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신체반응을 보이며 일시적으로 조금씩 떨리는 무대 공포증은 갖고 있겠지만 발표 전날부터 잠을 못 자고, 발표가 끝난 한참 뒤에도 지속적으로 창피함이 밀려온다면 사회 공포증으로 분류될 수 있을 거다. 발표할 때도 숨이 가빠서 목소리가 떨리는 걸 감추려고 계속 헛기침을 해대고 코를 훌쩍거리다 보니 평상시에도 그런 습관이 들어버렸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남들 앞에서 창피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감기 걸린 척했던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의 약하고 서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엉뚱한 행동을 하고 불필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회 공포증의 증상이다. 단골 손님이 되면 주인이 말을 붙일까봐 멀리 있는 가게를 찾고, 모임에 참석해서도 핑계를 만들어 도망칠 궁리를 하고, 일부러 까칠하고 불쾌한 모습을 보여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며 상황을 회피할 생각을 한다.

 

자꾸 사람들 없는 곳을 찾다 보면 오히려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나 스스로도 어딘가 음침해 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사람들을 피하면 피할수록 대인관계의 악순환에 빠진다. 전화통화 대신 문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시대여서 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러다 영영 사람들 속에 들어가는 연습이 안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이 책은 사회 불안에 맞서려면 두렵게 하는 것에 직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려운 상황에 점수를 매기는 노출 기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막연한 공포보다는 수치화할 수 있다면 두려움의 강도가 약해지는 걸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뻔뻔해지는 약이나 넉살 좋아지는 약이 있다면 모를까 아직까지 약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도가 심한 사람들을 위해 항정신성 의약품에 관한 내용도 실려 있다.

 

사회성이라는 건 남이 요구를 해서 학습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필요를 느껴야 한다. 수줍음 때문에 원치 않는 고독을 유일한 친구로 삼으며 살아야 하고, 남들의 시선과 평가 때문에 수많은 기회를 놓쳐야 한다면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지레짐작 하지 말자. 그리고 모두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