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언제 이렇게 어질러졌는지 모르게 잡동사니로 채워져버렸다. 정신은 좀 없지만 필요할 때 정확히 찾아 쓸 수 있는 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정리는 '언젠가 시간 날 때'로 미뤄진다. 그러다 결국 쌓아놓은 책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콘센트에 커피를 쏟고 나서야 마지못해 허둥지둥 치우게 된다. 그리고는 그동안 간당간당, 아슬아슬, 조마조마, 불안불안했던 신호들을 무시해 왔음을 인정하고 진작 치우지 않은 게으름을 탓한다. 개학 전에 방학숙제를 몰아서 하듯,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전에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건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딱히 눈에 보이는 증상이 없는 한 나쁜 습관인 줄 뻔히 알면서도 야식을 먹고, 캄캄한 데서 책을 보다가 결국 바지가 안 맞고, 안경을 써야 하는 눈에 띄는 변화가 감지되고 나서야 자신의 평소 습관을 되돌아 보게 된다. 이렇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어느 정도로 해야지 마음이 병들고 자아를 잃어버릴 정도가 되면 손을 쓸 도리가 없다.

우리 보다 수 세기 앞선 시대의 지식인들도 그런 점을 경계했던 모양이다. 그 당시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나아졌음에도 현대인들은 마음의 풍요와는 거리가 멀어진 것 같다. 높은 빌딩과 널찍한 도로를 가지고 있어도 안목은 좁아지고, 소모하는 것은 많아졌지만 누리는 것은 적어지고,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도 판단력은 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의 해결책은 과거의 지식인들에게서 찾아야 할 거다. 낡고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졌던 그들의 지혜를 빌려 어떻게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지 도움을 받아야 한다.

고대의 유학자, 도사 및 선사 등은 모두 당시 뛰어난 정신분석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6쪽)

 

현대인들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다. 불안을 없애려면 자신을 되돌아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도 조급증 때문에 그걸 못 견딘다. '3분 먼저 가려다 30년 먼저 간다'는 교통 안전 표어에도 불구하고 그린라이트가 켜지기 전에 위험천만하게 도로를 건너고,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더 빨리 가기 위해 한쪽을 비워둬야 하는 세상에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한다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은 정좌하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안으로 힘을 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런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결과만 원한다는 게 문제다. 건강을 잃기는 싫은데 꾸준한 운동과 식단 관리는 귀찮고, 결국은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 약이나 항생제 따위에 의지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닥친 모든 문제들을 한방에 해결해줄 헛된 꿈만 쫓는다. 그래서 수신(修身)이라는 말보다 수양(修養)이라는 말에 더 마음이 끌린다. 養에는 기른다는 뜻이 담겨있다. 기른다는 것은 순차적이고 점진적이라는 의미로, 과정 없이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싹이 늦게 자란다고 뽑아 올리고, 달걀을 미리 꺼내려고 닭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옛날엔 바둑도 검술 연마도 심신수양의 일종이었는데 이제는 경쟁이 돼버렸다. 인터넷 바둑에 중독되어 오락이 아닌 피로전이 됐었다는 저자의 경험처럼 스포츠도 승부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승부욕이 열정이 될 수도 있지 않냐는 반론에 대해 저자는 '더 나은 방법으로 분발하라'고 말한다. 지나친 의욕으로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본다면 삶은 무미건조해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런 현상을 문화적 타락이라고 꼬집는다. 오늘 먹을 만큼의 물고기만 낚고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어부에게 왜 더 열심히 일하지 않냐며, 더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돼서 나중에 느긋하게 지낼 생각을 하라고 다그치던 상인이 어부의 한가로움을 보지 못한 것과 같다. 시간을 아껴서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은 장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는 우를 범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속세를 벗어나 은거하라는 말도 아니다. 장저, 걸닉 같은 은자들이 공자의 헛된 수고를 비웃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유가가 명리를 부정한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다만 지나친 욕망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현대인들은 유가의 가르침이 지금의 현실과 맞지 않는 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지금같은 극심한 경쟁이 없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어느 사회든 생존 스트레스와 격렬한 경쟁이 없는 사회란 없다고 말한다. 과거엔 기회가 적었기에 보이는 것보다 경쟁이 심했다는 사실을 놓쳤을 뿐이다. 과거에도 우리와 똑같은 문제에 직면했었고,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했기 때문에 그들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우수한 성적과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던 사람이었다. 그런 허영심 때문에 실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예를 통해 생명에 대한 공경을 가르치는 유가 사상을 공부하면서 달라졌다고 한다. 흔히 엘리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총애를 받으며 부모가 정해놓은 코스를 밟다 보니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 문제가 생기기 쉽다. 남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한국의 직장인들을 예로 들며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한 거라는 저자의 지적에 뜨끔하기도 했다.

 

나무를 심지는 않고 베어내기만 하면 벌거숭이 산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꺼내서 쓸 줄만 알았지 채워넣을 줄 모르니 몸과 마음이 고갈되고 소진되어 공허함으로 무너지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느긋하게 먹고 살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연료를 채워넣듯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는 현실은 의욕을 잃게 만든다. 우울증으로 열정을 잃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는 지금, 마음을 다스리고 현재를 더 의미있게 살아가라는 과거의 지혜는 진정 잘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학문인 것 같다. 마음이 편안하면 호화주택과 고깃국이 부러울까. 책을 읽는 내내 웬지 모를 고요함과 느긋함을 맛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