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를 해본 적도, 롤러코스터를 타본 적도 없어서 평소엔 '생존본능'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런 것들을 애초에 시도하지 않았다는 게 죽지 않으려는 의지가 너무 강해서일 수도 있지만. 뉴스에 끊이지 않는 대형사고 소식들 때문에 온국민이 안전의식에 민감한 때이긴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일상생활에서 생명의 위협과 마주하는 일이 드문 건 사실이다. 그런데 안전한 상황에서도 우리 뇌가 계속 경고등을 깜빡이며 생존본능 스위치를 켜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전 한밤중이라 전기 사용이 많지 않았는데도 차단기 스위치가 자꾸 끊겨 당황했던 적이 있다. 전기 배선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 별 이상 없는 걸 보면 차단기가 고장난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PC 사용시 그런 일이 또 생길까봐 한동안은 자주자주 저장하고, 가능하면 사용을 자제하느라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생존본능도 차단기와 비슷한 원리인 것 같다. 지나치게 예민해지면 정상적인 생활을 작동 중지시켜 버린다. 그리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편안함의 배신>은 불편을 생존본능과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상당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제목만 봤을 땐 디지털 기술의 과잉이 가져온 문제점과 아날로그적인 삶의 추구를 말하는 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심신의학에 관련된 내용이다. 배고프지 않아도 계속 음식에 손이 가서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하고, 갑작스런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등의 원인이 모두 생존본능이 날뛰기 때문이라는 거다.

꼬박꼬박 굶기지 않고 제때 끼니를 챙겨줘도 강아지가 허겁지겁 밥그릇을 비우는 데는 앞으로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본능이 깔려 있다. 문제는 인간의 뇌 깊숙한 곳에도 논리가 통하지 않는 변연계라는 원시적인 영역이 뿌리내리고 있어서 나중에 먹을 충분한 음식이 있고, 우리 몸에 당장 필요가 없는데도 단지 생존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먹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신체적 요구와 정신적 요구가 달라서 생긴 문제다.

수면 역시 우리를 무방비 상태로 만든다는 점에서, 불면증은 생존본능이 깨어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다. 거기에 우리는 우리를 죽일 수 있는 고통과 불편을 회피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탓에 고통을 빨리 완화하려고만 해서 너무 성급히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고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많은 약을 필요로 하게 되고, 자기 전에 TV를 켜놓다 보면 점점 더 오래 봐야 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자꾸 쉽게 외부의 힘에 의지하는 습관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공황장애 역시 생존본능이 우리의 정서적 고통을 예상하고 우리를 보호하려고 즉각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상관없는 두 가지 일이 짝을 이루는 '조건화'의 영향력이 세포 수준에까지 미친다는 내용은 눈여겨 볼만하다. 두려움 증상이 삶의 다른 영역으로 어디까지 퍼질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TV, 영화, 광고 등이 불편을 이용하는 방법을 통해 생존본능을 괴물로 만드는 문화 현상도 파헤친다.

광고업자들은 소비자들이 불편을 해소하지 못해 불안하게 만든 후에 자신의 광고 상품을 그 해결책으로 묘사해 놓는다. (170쪽)

요즘 애들은 인내심이 부족하고 나약해졌다는 말을 들으며 불쾌해했지만, 나도 커서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에서 인터넷까지 기술의 진화는 갈수록 불편을 감수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로 작용하고 있다. 불편을 제거하려는 강박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장애물이 되고, 성장과 성취를 방해한다. 불편은 얼마든지 생산적인 활용이 가능하다. 내 삶의 주도권을 생존본능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불편함을 건강한 방식으로 견뎌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감사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정서적, 신체적 건강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편함에 직면해서도' 편안과 안전을 찾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