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내서 연습해 봤어? 발표할 때처럼 소리내서 연습해 보라고.

눈으로 읽을 때랑 많이 다르니까. 긴장하면 호흡이 제멋대로거든.

멀리 있는 사람들까지 생각해서 더 크게 소리내면 숨이 많이 딸려.

마이크 있다고 안심하지 말고. 그게 더 힘들어.

스피커로 자기 긴장한 목소리 들어봐. 더 긴장하지.

시간도 재 보면 더 좋구.

드라마 미생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 중인 장그래에게 오과장이 해준 조언이다. 장그래는 기껏 발표 파트너 한석율에게 그 비법을 전했지만, 평소 누구 앞에서 떨어본 적 없는 사람이다 보니 들은 척도 안 했고 결국 둘은 주먹다짐까지 하게 된다. 그렇게 큰소리는 쳤지만 프레젠테이션 당일 한석율은 더듬거리기 시작하고 심지어 내용을 까먹고 허둥대다 장그래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만다. 긴장과 불안은 그렇게 평소에 잘하던 사람도 실력발휘를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실전처럼 연습해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많이 들어왔을 테고, 소리내서 읽어야 한다는 것쯤은 상식이다. 호흡은... 사람들 앞에 서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이 막혀 봐서 느낌 아니까~ 넘어가고, 마이크 잡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긴장의 증폭 얘기는 신선하게 와 닿았었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순서대로 일어서서 교과서를 읽을 때 내 차례가 한참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떨려 오고 얼굴은 홍당무가 됐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게 아니라 아주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내 심장소리가 밖으로 들리는 것 같았으니 그것도 증폭이라고 해야 하나? 떨리는 목소리와 딸리는 호흡을 코가 막혀서인냥 훌쩍거리고 헛기침을 해대며 숨기려했다. 가장 싫어했던 발표시간, 남들은 긴장하면 눈 앞이 하얘지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던데 나에겐 사람들이 꼭 비웃는 것 같아 땀구멍 수준의 표정변화나 모기 소리 같은 미세한 소리까지 다 보이고 들렸다. 영화 속에서 슬로비디오로 웅웅거리며 땀방울이 커다랗게 흘러내리는 장면 그대로다. 그때부터 일찌감치 남들 앞에 나서는 사람은 못 되겠구나 하고 주제파악을 했었다. 전화로 음식 배달시킬 때도 공황장애가 오는 약심장으로는 큰일하기 글렀던 것이다.

배짱 두둑하고 넉살 좋은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강심장 그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재능이다. 다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중압감을 못 이긴다면 소용없으니까. 중압감이라면 아마 매 순간 승리와 패배의 갈림길에 서 있는 스포츠 선수들이 가장 심하지 않을까. 그래서 멘탈 코치라는 직업도 있나 보다. 스포츠 심리학자인 저자는 만약 불안과 긴장에 좋지 않은 에너지만 있다면 큰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모두 무너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불안을 느껴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만 있다면 촉진 에너지로 바꾸는 게 가능하다.

각 항목에 1~4점까지 점수를 매겨야 하는 불안 강도 측정에서 전부 '아주 많이 그렇다 4점', -3점에서 +3점까지인 불안 해석 측정에서 전부 '아주 방해된다 -3점'을 매겼다. 과연 불안을 '아주 도움이 된다 3점'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불안은 방해만 될 뿐이라는 부정적 자기암시가 너무 강해서일까? 긍정 에너지가 급선무다. 어쨌든 불안극복엔 훈련이 필요하다. 거북이 등껍질을 메고 수련하는 드래곤볼처럼 가혹한 조건에서 견뎌내는 훈련을 해둬야 중요한 실전에 닥쳤을 때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다. 누구나 다 해봤을 대표적인 실전연습이라면 모의고사가 있겠다. 분위기 자체가 긴장감 넘치니 집이나 독서실에서 편하게 공부할 때랑은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난 모의고사 잘 보면 뭐하냐며 설렁설렁 했던 기억이 있다. 남들은 집이나 독서실에서도 실제와 같은 제한시간 내에 문제집을 풀기도 했다는데 난 한 문제 풀고 간식 먹고, 한 문제 풀고 화장실 가고 했었으니까.

책에 소개된 사이클 선수의 빽빽한 메모처럼 실제상황에 대비해 세세한 마음가짐을 준비해둬야 한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김구라처럼 평소 욕을 많이 먹어서 무서울 것 없는 사람도 공황장애로 무너지는 걸 보면 불안이라는 녀석이 언제 갑자기 치솟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불안을 기회로 이어가려면 열정을 담아낼 수 있는 튼튼한 심장이 필요하다. 스포츠 이외에도 다양한 상황 별 불안 극복 처방을 제시하고 있어 평정심 유지에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