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아는 자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자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음모 때문에 연성의 아이를 유산하고는 살아가야 할 이유가 복수 외엔 남지 않는다. 그 대상엔 기우도 포함된다. 기우는 점점 치밀하게 사악해지는 복아를 알면서도 눈감아 줄 뿐, 터놓고 대화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대의 때문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나중에 보상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첫 만남처럼 계속 달콤할 수 있다면 어찌 오늘의 이별이 있겠는가?

-청나라 문인 납란성덕의 <목련화>의 한 구절 (318쪽)

거래로 시작된 둘의 인연에 애초부터 달콤함은 없었다. 마음을 열었을 땐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 버렸고, 남아 있는 것은 악몽과 전쟁 뿐이다...

<경세황비>와 가장 많이 비교되는 작품이 <보보경심>이다. 그 작품에서는 황제를 따라 궁 밖으로 나간 것 외에는 거의 궁 안에서 진행되지만, <경세황비>는 스케일이 커진 대신 궁을 빠져나가도 어떻게 해서든 다시 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납치돼서든, 자기 의지에 의해서든, 첩자라는 죄명으로 연행되든, 궁녀로 차출돼서든, 예전의 얼굴을 되찾기 위해 원 부인의 초상화를 가지러 가서든, 기우에게 복수하기 위해 연성을 만나기 위해서든, 의문을 풀기 위해서든, 전쟁에서 패해서든. 모로 가든 궁중만 가면 되나 싶기도 하지만, 탈옥 드라마인 <프리즌 브레이크>가 추적 드라마가 되지 않기 위해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는 설정처럼, 궁중 로맨스의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받아들이는 게 작품을 즐길 수 있는 길이겠다.

 

얼굴의 변화도 점 하나 찍고 나타나 다른 사람 행세하는 <아내의 유혹>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두 나라의 궁을 오가며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갑자기 창문을 가리는 등 등장인물들의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들이 처음엔 흐름을 끊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한참 뒤에서야 이유가 밝혀지는데도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장치를 잘 심어뒀다는 생각이 든다. 이중삼중의 음모를 한 꺼풀씩 벗기며 반전에 반전을 더해 추리물과 첩보물의 재미까지 느낄 수 있다. 어린 나이의 작가가 쓴 작품이라는 게 놀랍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