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사랑의 기술이지만 저자는 정신분석학자 +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 제목만 보면 연애하는 비법 같은 것이 나와 있을 것 같아서 내심 기대를 했지만 퍽이나 그럴쏘냐. 에리히 프롬이라는 왠지 모를 고리타분한 이름에 걸맞은 전혀 가볍지 않은 책이었다. 연애하기 위한 기술을 배우고 싶다면은 당장 이 책을 덮고 닐 스트라우스의 저서나 돈 후안과 카사노바를 소재로 한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내 주관적으로는 더럽다고 생각하는) PUA들이 쓴 글들을 보거나 하길 바란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고찰한 책이니 말이다.

  사랑의 이론에서부터 사랑의 실천까지 구성된 짧은 책이다.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고 다른 사람과 합일하기를 바라면서 사랑이 시작된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받는 유아적인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면서 아이를 키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데 이는 조건적인 사랑이다. 아버지가 인정할만한 일을 하면 사랑을 받는 것인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성이 길러지고 생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자라나면 사랑을 주는 게 된다는 게 프롬의 이론이다.

  잘못된 사랑의 모습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부성애와 모성애가 과잉·결핍되었을 때의 모습과 사이비 사랑, 즉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위대해 보이는 사랑과 감상적인 사랑에 대해서도 말한다.

  많은 유형의 사랑도 이 책에는 담겨 있다. 형제애, 모성애, 성애(性愛), 신에 대한 사랑, 자기애와 같은 주제들이 많은데, (오히려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는 굉장히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 프롬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결국 자기애이다. 물론 자기애가 형성되는 과정이 바람직해야 제대로 된 자신을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랑을 경험한다.

  자기애가 중요한 이유는 사랑과 이기주의를 잘 구별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으로 자신을 평가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한 신앙 또한 자기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여기서 신앙의 의미는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고 자신에게 있는 뚜렷한 가치관을 의미한다. 자신이 가장 믿는 신념 같은 것. 자기애가 있다면 자신이 믿고 있는 대로 행동할 수 있고 이는 용기의 원천이 될 것이다. 

사랑의 능력은 여러 가지 다른 생활 분야에서 생산적이고 능동적인 방향을 취할 때에만 생길 수 있다. 다른 분야에서 비생산적이라면, 우리는 사랑에 있어서도 생산적일 수 없다. p.172 

  사랑을 받을만한 사람이 따로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프롬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자아도취적인 사랑에서 벗어나서 이성의 발달이 필요하다는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왠지 수긍이 간달까? 사랑이라 하면 남녀 간의 사랑만 떠올리던 나에게 다른 사랑을 생각해 볼 만한 책이었다. 사랑을 배워나가는데 전 생애를 바쳐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참고로 신에 대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있다. 아무래도 기독교의 역사가 짙은 서구문화라서 그런가? 기독교가 아닌 나로서는 내용이 많이 수긍이 갔는데 기독교 신자들은 읽으면서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이트도 꽤 많이 비판한다. 개인적으로 이해가 참 어려운 책이었다. 프로이트도 잘 모르고 중학교 이후로 기독교에 관심을 끊어서. 번역도 깔끔하지 못한 느낌... 내 읽는 실력이 미숙한가 보다.